남간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전기에, 예문직제학, 지사간원사,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의령(宜寧)
주요 관직
대사헌
정의
조선 전기에, 예문직제학, 지사간원사,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의령(宜寧). 할아버지는 개국공신 남재(南在)이고, 아버지는 남경문(南景文)이며, 어머니는 방순(方恂)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419년(세종 1)에 진사가 되고 음보(蔭補)로 등용되어 형조좌랑에 올랐다. 1427년 친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좌정언이 되었는데, 이때 부사정(副司正) 성규(成揆)가 거짓으로 사정임을 자처하는 데 동성친(同姓親)인 우정언 성자량(成自諒)의 말만 믿고 전직(前職)을 조사하지 않아, 직무유기의 죄로 좌사간 김섭(金涉), 우사간 우승범(禹承範) 등과 함께 파직당하였다.

1430년 호조좌랑으로 다시 기용되어 공법(貢法) 제정에 관여, 전품(田品)을 9등으로 구분하여 징세할 것을 주장하였다. 그해 지평이 되고 1432년 병으로 강화도에 휴양 중 정포만호(井浦萬戶) 도대평(都大平)으로부터 생선을 선물로 받은 것이 문제가 되었으나, 좌대언 김종서(金宗瑞)의 변호로 불문에 붙여졌다.

이듬해 우헌납, 1436년 장령을 역임하고 예문직제학을 거쳐, 1439년 지사간원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직무수행의 불능함을 들어 사직을 청하였다. 이에 세종은 남간의 아부할 줄 모르는 절조와 청렴하고 성실한 성품을 가상하게 여겨 오히려 대사헌에 임명하였다.

참고문헌

『세종실록(世宗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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