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왕대(681∼692)와 효소왕대(692∼702)의 고승 혜통(惠通)의 집이 있었던 은천동(銀川洞)에 있었다고 하며,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미상이다.
신라 애장왕과 헌덕왕 때에 이 절의 승려였던 일념(一念)이 「촉향분예불결사문(觸香墳禮佛結社文)」을 지은 것으로 볼 때 헌덕왕 이전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절에 관한 역사는 전혀 전래되지 않고 있다.
현재의 남간마을에는 1987년 보물로 지정된 남간사지 당간지주를 비롯하여 8각의 대좌와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남간사지석정, 초석 등이 남아 있다. 이 중 당간지주는 현재는 가운데 있는데, 양지주가 동서로 대립하였고 상하에 간공(杆孔)이 있으며, 높이는 3.6m이다.
석정은 길이 80㎝, 너비 40㎝이며, 사지는 현재 민가로 바뀌었고 초석과 축대 등도 민가에서 사용하고 있다. 절의 가람배치나 건물의 규모 등을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이 동네 중앙에 위치한 탑재를 기준으로 하여 이 일대를 법당 터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