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남세혁(南世赫). 경상북도 영덕 출신.
1919년 3월 영덕군 영해면 성내동의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월 이래 서울·평양·대구 등 전국적으로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자, 정규하(丁奎河)·남효직(南孝直)·권상호(權相鎬)·박의락(朴義洛) 등의 동지를 규합하여, 병곡면·축산면·창수면 일대의 기독교도와 지방유지를 포섭하는 일을 분담하였다.
3월 18일 성내시장에서 2,000여 명의 시위군중 앞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한 뒤 시장일대를 누비며 시위하였다. 영해 경찰관주재소에서 경찰을 급파하여 강제로 해산시키려 하자, 먼저 순사와 순사보를 구타하는 등 강력히 대항하였다.
또한 이 기세를 이용하여 군중을 이끌고 경찰관주재소와 면사무소·우편소·영해공립보통학교·영해공립심상소학교 등을 습격하였다. 특히, 일본인이 경영하던 영해공립보통학교에서는 공문서류와 당시 시가로 2,000원에 해당하는 기구와 기계류, 580원 상당의 도서류를 파괴, 소각하였다.
이에 영덕경찰서장이 순사와 순사보 등을 지휘하여 시위군중을 해산시키려다 오히려 집단폭행을 당하고 본서로 쫓겨갔다. 이후에도 만세시위를 지휘하다가 대구 보병 제80연대와 포항헌병분대에서 출동한 군인과 헌병이 해산하는 과정에서 체포되어 7년간 옥고를 치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