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0년(영조 26)경 조정서의 아들 조명진(趙明震)·조명리(趙明履)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조명리의 발문이 있다.
2권 1책. 목활자본. 장서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권1에 시 183수, 권2에 서(書) 9편, 기·논·제문·묘표·잡지(雜識) 각 1편과 「남곡선생속록」에 시 9수, 부록으로 행장과 묘지명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모두 뛰어난 가작으로 전체적으로 고졸하고 담박한 맛이 강하게 풍긴다. 또한 쉽고 담백한 시어로 은유나 비유를 통하지 않은 맑고 투명한 분위기를 창출하였다. 주로 자신의 청담한 생활을 읊었으며, 특히 자신이 은거하던 남곡의 사시사철의 변화와 그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오언절구 「야문초충(夜聞草蟲)」과 「도중문선(途中聞蟬)」은 이러한 저자의 시풍이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다.
칠언절구 중에서 「조기(釣磯)」는 도가의 신선으로 자신을 비유해 표현한 시인데, 팽팽한 긴장감과 적막함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야우(夜雨)」와 「추우(秋雨)」는 각 체별로 지었는데, 자신의 은거생활의 즐거움, 인생의 허무감과 애달픔, 또한 자신의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타당성을 발견하려는 노력이 짙게 깔려 있는 작품이다.
서(書)는 대부분이 안부편지들인데, 이 중에서 「답김도이(答金道以)」 3편은 서로 학문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독려하는 절차탁마의 절실한 정을 표현한 것이다. 「답이질희지(答李姪喜之)」 2통은 평문(評文)과 작문(作文)의 도(道)에 대해 논한 것이며, 별지(別紙)에서는 『중용』의 ‘천명지성(天命之性)’의 ‘명’자와 ‘사생유명(死生有命)’의 ‘명’자와의 차이에 대하여 이기설로 설명하였다.
그밖에 「동파득지기해심어형공론(東坡得志其害甚於荊公論)」은 소식(蘇軾)의 사람됨을 왕안석(王安石)과 대비시켜 논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