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탁부(卓夫), 호는 유유헌(由由軒). 아버지는 남융달(南隆達)이다.
1624년(인조 2)에 사마시에 합격, 1630년에 음보(蔭補)로 기용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 때 사옹원 봉사로서 왕을 남한산성에 호종하였으며, 당시 성 안에서 있었던 일을 『난리일기(亂離日記)』로 써서 남겼다. 환도한 뒤 종묘시 직장으로 옮겨 위패를 고쳐 봉안하였다.
그 뒤 조정에서 왕을 호종한 사람을 위하여 과거를 보게 하였으나 치르지 않았고, 또 별제를 제수하였으나 받지 않고 고향에 내려가 『잠농요어(蠶農要語)』를 지었다. 참판에 추증되고 저서로는 『유유헌유고(由由軒遺稿)』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