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유집 ()

남은선생유집
남은선생유집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여중룡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8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여중룡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8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68년 여중룡의 아들 여영항(呂永恒)과 동지들이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김병은(金秉殷)과 족질 여영복(呂永復)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박훈(朴勳)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2권 2책. 석인본. 국립중앙도서관과 단국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에 시 108수, 서(書) 43편, 권2에 잡저 10편과 부록으로 만사 4편, 제문 3편, 행장·묘갈명·순충기념비(殉忠紀念碑)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주로 시사(時事)를 걱정하며 우국충정의 간절한 마음을 평이한 시어를 사용해 담백하게 표현하였다. 서는 대체로 정부에 대하여 국사와 시사를 논하여 그 폐단의 시정을 요구한 것, 정부각료 및 의사들과 국사를 논하며 축일독립(逐日獨立)의 일을 의논한 것, 일본 및 각국 공사와 대사들에게 일본의 기만적인 침략을 고발하고 그 야만적인 행위를 규탄한 것들의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당시의 정세와 유림들의 의병활동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논국시정정부서(論國是呈政府書)」에서는 동서열강들이 우리나라를 넘보는 것은 기강이 해이해졌고 자립정신과 주체의식이 소멸했기 때문이라 하고, 자립정신과 자치기강의 확립을 주장하였다. 내부·외부·군부 등 3부의 독립과 민주적인 협력 등 근대적인 정치관을 표명하고, 군제(軍制)를 쇄신하여 양반자제들에게 군역을 의무화할 것과 근대 서양식의 훈련 등을 강조한 점이 주목을 끈다.

이와 함께 그는 누락된 세원(稅源)을 찾아 군비에 충당하고 새로운 시대에 맞게 교육제도를 혁신해, 모든 국민에게 국문·산수·경리·지리 등 기초 학문을 가르쳐야 한다는 안을 제시하였다. 또한 각 나라와 통상을 활성화시키고 사치품의 밀수입을 엄금하며, 외국인의 국내에서의 범법은 국내법에 의거해서 처벌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국내외 정세를 정확히 파악했고, 제시한 해결방안이 진보적이면서도 주체성을 잃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잡저의 「병신일기(丙申日記)」는 저자가 족종(族從) 여영소(呂永韶)와 함께 의병을 창기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한 것으로 사료적 가치가 크다. 그밖에 「충의사창립취지서(忠義社創立趣旨書)」·「충의사조례(忠義社條例)」·「서명록(署名錄)」 등은 영남유림들의 애국단체 활동의 취지와 그 조직을 뚜렷이 나타낸 자료이다.

「경국약론(經國略論)」은 병제·재무·토지제도에서 혁신적인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특히 재무에서 공업과 무역의 활성화와 수입관세의 부과, 부자에 대한 누진세의 적용, 궁중경비를 100분의 1로 삭감해 교육과 양병에 전용할 것, 인재의 외국유학 등을 주장하였다. 「을사일기(乙巳日記)」는 1905년 7월에서 1906년 8월까지 저자가 일본헌병대에 끌려가 고문당하며 옥고를 치른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당시 의사들의 활동상황을 연구하는 데 좋은 참고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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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한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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