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령(宜寧). 자는 사수(士秀). 할아버지는 참판 남응운(南應雲)이고, 아버지는 남위(南瑋)이며, 어머니는 한옹(韓蓊)의 딸이다. 좌의정 남이웅(南以雄)의 형이다.
1609년(광해군 1)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이듬해 정언, 1611년 지평, 1612년 헌납·지평·문학, 1613년 헌납·장령을 역임하고 1614년 필선이 되어 동생 남이웅과 함께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집의를 거쳐 1615년 사간이 되었는데 이에 앞서 대북파 이이첨(李爾瞻)·정인홍(鄭仁弘) 등이 영창대군(永昌大君)을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한 뒤 살해하고, 국구(國舅) 김제남(金悌男)을 살해하는 데 세운 공으로 활 1정을 하사받았다.
1616년 예조정랑·지제교·수찬, 이듬해 봉상시정을 거쳐 다시 사간이 되어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는 영의정 기자헌(奇自獻) 등을 탄핵하고 대비를 서궁(西宮)에 유폐하는 데 앞장섰다. 1618년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 국경수비를 강화할 때 경성판관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