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의령(宜寧). 숙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1720년(숙종 46) 공주영장(公州營將)에 등용되었다. 경종이 즉위하자 충청도 수군절도사가 되었으며, 소론에 가담하여 왕실의 복제(服制)를 놓고 다투는 예송문제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1723년(경종 3) 금군별장(禁軍別將)이 되어 중병(重兵)을 장악하였다. 같은 해 평안도병마절도사를 거쳐 수군통제사 등을 역임하였다. 1724년(영조 즉위년)에 훈련도정이 되었으나, 소론의 심복이 되었다 하여 한때 파직당하였다. 1728년에 정미환국으로 노론이 물러나고 소론이 등용되자, 포도대장으로 복직되었다.
그해 같은 소론인 이인좌(李麟佐)와 정희량(鄭希良) 등이 청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서울에서 내응하기로 했다는 죄로 일당들인 신광원(愼光遠)·민효관(閔孝觀) 등과 함께 참형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인좌 등이 반란을 일으키기 직전에 도성 안에서 유언을 퍼뜨리는 자를 색출하여 옥에 가두고 왕에게 보고한 사실과 또한 역적에의 가담여부를 가리는 신문에서 끝내 승복하지 않았다는 기록 등으로 보아, 역적공모의 죄명은 의문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