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단 ()

천도교
단체
1924년에 조직된 천도교 여성들의 사회운동단체.
정의
1924년에 조직된 천도교 여성들의 사회운동단체.
개설

초기부터 손병희(孫秉熙)는 최시형(崔時亨)의 부화부순(夫和婦順)의 여성관을 이어받아, 여성도 완전한 인간으로 인식하여 인내천의 사상에 포함시켰다. 이와 같은 여성관에 따라 손병희는 여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의식개혁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 그리하여 여성의 개화를 위한 교육사업을 적극적으로 권장하였는데,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하여 1924년에 와서 천도교 최초의 여성단체로서 내수단이 조직되었던 것이다.

내수단은 손병희의 부인 주옥경(朱鈺卿), 딸 손광화(孫廣嬅), 그리고 등이 주축이 되어 1924년 3월 31일에 발기회를 열고 4월 5일에 창단되었다. ≪천도교회월보≫ 통권 164호에 실린 <내수단의 조직을 동덕 제위에게 고합니다>라는 주옥경의 글에는, “우리도 가치있는 참된 신앙의 길로 나아가기 위하여 우리 여자들로써만 조직된 내수단이 출현하였습니다.”라고 하여 내수단의 조직을 내외에 알렸다.

설립목적

내수단은 천도교 여성 신도들의 신앙 활동을 주요 목적으로 내걸었지만, 다양한 사회사업을 주로 전개하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의생활 개선운동과 여성계몽운동을 중심적으로 벌였다. 의생활 개선운동으로 1928년 제1회 전국대표대회를 계기로 흰옷을 폐지하고 색복(色服) 입기 및 단추달기 운동을 벌였다. 이것은 1904년 손병희의 지시로 일어났던 천도교 갑진개혁운동 당시 흑의단발운동(黑衣斷髮運動)을 계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그리고 또 다른 내수단의 사회운동으로는 여성계몽운동을 들 수 있는데, 전국 800여 개의 교리강습소에서 부녀자들을 위한 강습과 계몽운동, 강연회 등을 벌였다. 또한 내수단 본부에서는 1927년부터 중앙대교당에서 부인야학을 개강하여 수강생들에게 교리, 조선어, 산술, 일어, 일반상식 등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러나 내수단의 조직은 창립 이후 교단 분규와 관련하여 분열과 통합, 개칭의 우여곡절을 겪었다. 1925년 천도교가 종통문제를 둘러싸고 신파와 구파로 분열하였다. 그러자 1927년에 구파측 여성교인들은 따로 천도교여성동맹을 조직하여 독자적인 활동을 벌였다.

그러다가 분열되었던 신구파가 1930년 합동하게 되자, 1931년에 내수단과 천도교여성동맹도 다시 합동하여 천도교내성단이라는 명칭으로 활동하였다. 그 후로도 천도교의 교단 사정으로 그 명칭은 1940년대 천도교내수회로 변경되었다가, 다시 1956년에는 천도교부인회로, 그리고 1968년에 가서 천도교여성회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천도교여성회70년사』(김응조, 천도교중앙총부, 1994)
『동학사상과 동학혁명』(이현희 엮음, 청아출판사, 1984)
집필자
조현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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