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지 ()

법제·행정
제도
승정원을 거치지 않은 국왕의 명령이나, 국왕이나 왕세자가 궁궐 안에 부재할 때 왕비가 내리던 명령.
정의
승정원을 거치지 않은 국왕의 명령이나, 국왕이나 왕세자가 궁궐 안에 부재할 때 왕비가 내리던 명령.
개설

내지(內旨)는 문자 그대로 ‘대궐 안으로부터의 뜻’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대궐 안이란 궐 안에 있는 왕 또는 왕비를 가리키므로 내지는 왕의 뜻이나 왕비의 뜻을 가리킨다. 국왕의 내지는 신하들과의 의논을 거치지 않고 국왕이 친히 내린 명령을 뜻하며, 왕비의 내지는 여러 가지 사정으로 국왕에게 아뢸 겨를이 없을 때 궐내에 있던 대비가 단독적으로 시행한 명령으로 시행한 뒤에 사후에 왕에게 보고하던 임시 조처의 의미가 다분하였지만 효력은 왕명과 동일하였다.

내용

왕의 뜻은 보통 승정원이 문서로 작성하여 육조(六曹) 등 실무 관청에 전교로 전달되는데, 관청에 전달되기 이전 왕의 본래 의도를 내지라고 할 수 있다. 승정원의 승지가 합당치 않은 왕의 뜻을 거슬러 내지를 봉환(封還)한 사례가 있고 관직 임명에 대해 내지는 있었지만 제수는 하지 않았다는 기사로 미루어 보면, 내지는 신하와의 협의를 거치기 이전의 왕의 원래 의지를 뜻함을 알 수 있다. 내지는 왕이 친히 행한다는 ‘자내(自內)’라는 의미와도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왕이 자의적으로 행하는 단독적인 명령을 뜻하기도 한다.

한편 왕비의 내지는 왕이 거동하여 행재소(行在所: 국왕이 멀리 거둥하여 머무르고 있는 곳)에 있을 때, 궐내에 긴급한 일이 발생하거나 왕이 궁궐에 있다 하더라도 대내에 화재가 갑자기 일어나 왕이 조처하기 힘든 경우, 왕을 대신하여 행사하는 명령을 말하며, 왕의 교지(敎旨)와 짝하는 개념이다. 왕에게 보고할 겨를이 없을 경우 명령의 권한은 잠시 왕세자에게 위임되고, 왕세자조차 왕의 곁을 수행할 경우 그 권한은 왕대비에게 넘어가며, 이때 명령은 표신을 통해 행사되는데, 왕세자의 표신은 한 쪽에는 휘지(徽旨), 다른 한 쪽에는 왕의 수결인 어압(御押)을 쓴 휘지 표신을 사용하고, 대왕대비[태비(太妃)]의 경우는 한 쪽에는 의지(懿旨)를, 다른 한 쪽에는 역시 어압을 쓴 의지 표신을, 대비의 경우는 내지 표신을 사용하였다. 내지 표신의 경우 명령은 언간, 다시 말해 한글 편지로 전달되었다. 이와 같은 표신은 사칭을 방지할 목적으로 제작된 것으로 보이며, 실물은 확인할 수 없으나 처음에는 둥글게 만들다가 후대에는 한 쪽이 뾰족한 모습으로 제작되는 것으로 정식화되었던 듯하다. 4부를 제작하여 각각에 천(天), 지(地), 현(玄), 황(黃)의 자호(字號)를 새겨 넣었다. 고종이 황제로 즉위한 후 제작된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라는 책에 따르면 재질은 상아로 만들어졌고, 소신(昭信)이라고 쓰여 있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선에서도 같은 형태였는지는 기록상으로 확인할 수 없다. 왕후의 국장도감의궤에 실려 있는 반차도에는 내지궤가 빼놓을 수 없는 의물로 등장하는데, 내지궤에는 내지 표신이 담겨 있었고 이는 책보와 함께 권력의 중요한 상징물로서 취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내지와 내지 표신은 구별되어야 할 개념이며, 내지 표신은 내지를 위조나 칭탁 없이 실행하기 위한 증빙으로서 제작된 것이며, 제도적인 합리화의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내지 표신을 내지로 범칭하는 용례도 나타난다.

내지는 실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그 대신 의지(懿旨)를 통해 미루어 볼 수 있다. 현재 순원왕후(純元王后)의 의지 실물을 찍은 유리필름이 국사편찬위원회에 소장되어 있다. 이것은 1802년(순조 2) 10월 10일 당시 대리청정을 하고 있던 순원왕후가 좌의정에게 도탄에 빠진 백성들을 건져 내기 위해 성심을 다하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의의와 평가

내지는 왕이나 왕세자가 궁궐에 부재하거나 보고를 올릴 수 없는 긴급한 상황이 발생하였을 때 왕비가 권력을 대행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명백한 증좌로서, 왕비가 단순히 상징적인 존재가 아니라 국가 권력의 중요한 담당자였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대전회통(大典會通)』
『동전고(東典考)』
『보인부신총수(寶印符信總數)』
「순원왕후의 의지(懿旨)」
『증보 한국 고문서 연구』(최승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5)
집필자
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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