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농당 ()

정치
단체
1955년 이승만의 자유당에 반대하는 전진한(錢鎭漢) 등이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설립한 정당.
정의
1955년 이승만의 자유당에 반대하는 전진한(錢鎭漢) 등이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설립한 정당.
개설

1955년 2월 15일 전진한(錢鎭漢)이 노동자·농민·소시민층을 기반으로 하여 창당하였다. 1954년 1월 자유당이 숙당작업(정당이 내부의 부패를 바로 잡는 작업)을 펴 당내 족청계 세력은 소멸되고 이기붕(李起鵬)체제로 구축되자, 전진한은 이승만노선에서 이탈, 야당활동으로 전환하였다.

당수(위원장)에 전진한, 서기장 겸 총무부장에 유화룡(柳化龍), 조직부장에 변종철(卞鍾喆), 선전부장에 김용환(金用煥)이 선임되고, 재정부·농민부·노동부·어민부·협동조합부·문화부·훈련부·청년부·감찰부·부녀부 등의 14부와 서기국의 1국으로 조직되었다.

강령

강령은 다음과 같다. ① 우리 노농당은 근로대중의 정당한 권리를 옹호한다. ② 우리 노농당은 사회정의에 입각한 균형있는 국민생활을 보장한다. ③ 우리 노농당은 대한민국 주권하에 남북통일을 성취하기 위하여 투쟁한다. ④ 우리 노농당은 국제연합기구와 협조하여 세계평화를 촉진하며, 국제자유노동조합연맹과 제휴하여 진정한 자유세계 건설에 매진한다. ⑤ 우리 노농당은 자유협상주의로서 공산독재주의와 자본독점주의, 관료독선주의를 배격하고,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자유협동사회를 건설한다.

연원 및 변천

제3대 민의원선거(5·2총선)에서 참패한 노농당은 정치적 영향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하여, 혁신세력을 주축으로 하는 제3당의 창당운동에 나섰다. 이에 전진한은 1958년 6월 민주혁신당과 제휴, 같은 해 9월에는 전 국민당(이인·이규갑), 전 통일당(서상호), 사회당(조일래), 한국독립당(조경환) 등과 함께 ‘제3당추진9인위원회’를 조직하였다.

이 위원회는 창당발기준비대회를 1959년 4월중에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추진되지 못하였다. 제3당의 창당에 실패한 뒤, 노농당은 같은 해 12월 20일 정당의 명칭을 ‘민족주의 민주사회당’으로 변경하였다.

구성 인원은 위원장 전진한, 서기장 유화룡, 선전조직부장 김용환, 감찰위원장 김두한(金斗漢), 선거대책위원장 김상덕(金相德), 노동부장 김철(金喆), 협동부장 권철(權哲), 총무부장 권경주(權景柱) 등이었다. 정치노선으로는 민주사회주의를 채택하고 보수정치세력과의 대결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 정당은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당들의 등장으로 인하여, 반사적으로 이렇다 할 활동 없이 1961년에 소멸하고 말았다.

참고문헌

『한국정당사』(한태수, 신태양사, 1961)
『한국정당발달사』(이기하, 의회정치사, 1961)
『이렇게 싸웠다 : 政治 協同組合論說』(전진한, 무역연구원, 1996)
집필자
이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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