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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고위 관원이 왕명을 받거나 휴가를 받아 여행할 때 이의 편의를 위해 발급하던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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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고위 관원이 왕명을 받거나 휴가를 받아 여행할 때 이의 편의를 위해 발급하던 문서.
내용

노문을 발급받아 여행할 수 있는 범위는 대군(大君)·왕자군(王子君)·국구(國舅)·종친·의빈(儀賓)·재신(宰臣)·승지·삼사·춘방·육조당상·사신(使臣) 및 각종 사성(使星 : 왕명을 받들어 지방에 가는 관원)·유수·관찰사·진무사·통제사·병사·수사·동래부사·의주부사 및 내시부 상전(尙傳, 정4품) 이상 등이었다. 그리고 그 지위의 고하에 따라 차비(差備)에 차이가 있다.

노문은 여행 일정에 따라 연도(沿道)의 각 읍·역·참에 차례로 전하게 되며, 이에 따라 각 읍·역·참에서는 숙식 제공은 물론 모든 편의를 준비해 제공하였다. 노문은 병조에서 목판으로 인출한 용지에 해당 사항을 기재하게 되어 있다.

기재 사항은 ① 관원의 품계와 여행 목적, ② 의정부 또는 비변사 계하노문(啓下路文), ③ 관원의 관직과 성(姓), 여행 사유와 목적지, ④ 수행하는 군관(軍官)·녹사·서리·반당(伴倘)·노자(奴子)·나장(羅將)·고수(鼓手)·기수(旗手)·취수(吹手)의 수효와 사지마(私持馬) 및 차출하는 역인부(驛人夫)의 수효, ⑤ 경외관(京外官)은 받들어 살펴 각별히 지키라는 내용, ⑥ 연호 연월일, 어디서부터 출발함, ⑦ 목적지 도착까지의 점심먹고 묵을 읍·역·참 및 일정 등이다.

이 제도는 『대전회통』에서부터 나타나는데, 이 때부터 크고 작은 사성이 사용하던 백문(白文 : 찍어내지 않은 노문)·선문(先文 : 미리 보내는 노문)은 일체 금하였다.

출발하기 전에 역자(驛子)에게 주어 일정에 따라 차례로 전하게 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배행이서(陪行吏胥 : 모시고 가는 아전)가 연도 각 읍의 공형(公兄)에게 사통(私通)으로 알려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노문이 마지막 도착한 읍에서는 그것을 거두어 매 계절말에 선혜청에 보내어 회계에 참고하였다. 여행할 때에는 공노문(空路文) 1장을 가져갔다가 돌아올 때 해당 사항을 기재해 사용하고, 돌아온 뒤 병조에 보내도록 하였다.

1823년(순조 23)에 개정한 비변사 노문의 절목(節目)인 『노문식례 路文式例』에는 노문에 관한 세부 규정이 있다.

참고문헌

『육전조례』
『대전회통』
『한국고문서연구』(최승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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