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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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선도본/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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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을 설비한 조선 후기의 전선(戰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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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다락을 설비한 조선 후기의 전선(戰船).
내용

≪각선도본 各船圖本≫ 중의 전선도는 바로 이 누선을 그린 그림이다. ≪조선왕조실록≫에서 중국 사신이 내왕할 때 평양 대동강에서 뱃놀이하면서 탄 배도 누선이라 하고 있으나(中宗實錄 卷84 中宗 32년 3월 壬午, 同 4월 辛亥), 그것은 단지 차양으로 지붕을 얹어놓은 강선(江船)에 지나지 않고, ≪고려사≫에도 태조가 구사한 대형군선(高麗史 卷1, 太祖 世家)을 후세에 누선이라 하고 있으나(高麗史 兵志 2, 辛禑 14년 8월) 그것은 단지 다락[樓櫓]을 갖춘 배라는 뜻에 지나지 않는다.

조선 후기의 전선에는 통제사가 탑승하는 통영상선(統營上船), 각 도 수사(水使)·방어사 등이 탑승하는 중급 전선 및 각 읍진(邑鎭)의 일반전선 등 세 계층이 있다. 그들은 모두 상갑판 위에 사령탑으로 쓰는 다락을 설비하였는데, 이러한 식의 전선을 다락이 없는 다른 군선들과 구별하기 위하여 누선이라고도 하였다.

전선의 전신인 판옥선(板屋船)이 처음으로 개발되었을 무렵에는 누선이 별로 없었는데, 임진왜란 이후에 전선이 점차로 커지면서 누선이 늘어나 정조 무렵에는 경상좌수영 관하에만도 10척을 헤아리게 되었다(正祖實錄 卷33 正祖 15년 11월 壬辰).

누선은 위가 무거워 복원성능이 좋지 않고 운용도 불편하여 방패선 또는 거북선 등으로 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顯宗改修實錄 卷12 顯宗 5년 11월 丁酉, 正祖實錄 卷33 正祖 15년 11월 壬辰). 중국에도 일찍부터 누선이 있었는데(武備志), 조선 후기의 누선은 그것과 아무런 관계가 없이 엄연히 구별되는 배이다.

참고문헌

『중종실록』
『현종실록』
『정조실록』
『각선도본(各船圖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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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재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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