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서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실린 『진서(秦書)』에 사신 위두(衛頭)를 전진(前秦)에 보내 미녀를 바쳤다고 전하는 신라왕이다. 이는 신라라는 국명으로 중국에 사신을 파견한 최초의 기록으로서 381년(내물왕 26)에 해당된다.
실제 누한은 왕의 이름이 아니라 왕호(王號)인 마립간을 일컫는 것으로, ‘누’는 마루로서 뜻으로 읽으면 ‘마립’과 같고, ‘한’은 간(干)과 같이 음을 취한 글자로 해석되어, 마립간 칭호가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가 내물왕대로 추정되는 근거가 되고 있다.
위 기록에 이어 “해동의 형편이 옛과 같지 않다고 하니 무엇을 뜻하느냐.”는 전진왕 부견(符堅)의 물음과 이에 대한 위두의 “중국의 시대변혁·명호개혁(名號改革)과 같으니 어찌 옛과 같을 수 있겠느냐.”는 대답 내용이 실려 있다.
이 기사는 『삼국사기』내물왕 26년조(條)에도 옮겨져 기록되어 있으며, 이 시기가 신라가 고대국가로서 새로운 체제와 세력을 갖추기 시작한 중요한 발전단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