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바탕에 수묵. 세로 83㎝, 가로 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면의 왼편 가장자리에 연담(蓮潭)이라는 그의 호가 관서(款署)되어 있고, 뒤이어 ‘蓮潭(연담)’과 ‘金氏明國(김씨명국)’이라는 주문방인(朱文方印)이 찍혀 있다.
이 그림의 제작시기는 김명국이 통신사행(通信使行)의 일원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던 1636·1637년과 1643년 중 어느 한 해일 것으로 생각되며, 사행중 그곳 사람들의 요청에 응하여 그려주고 온 것으로 믿어진다.
남인도인(南印度人)으로서 6세기 경 중국으로 건너가 선종(禪宗)의 개조(開祖)가 되었다는 보리달마(菩提達磨)의 모습을 소재로 삼은 이 그림은 두포(頭布)를 쓴 상반신만 다루었다. 단숨에 그어내린듯한, 대담하고 힘찬 감필(減筆)로 처리된 달마의 모습은 고아함을 짙게 풍기며 활기차고도 강렬한 느낌을 자아낸다.
특히, 9년간의 면벽좌선(面壁坐禪)으로 응결된 달마의 내면적 정신세계가 한두번의 붓질로 표출되어 있어 김명국의 뛰어난 기량을 절감하게 할 뿐 아니라, 이 그림을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선종화로 손꼽히게 한다.
이 그림에 드러나 있는 필취(筆趣)는 거칠고 호방한 절파풍(折派風)으로 다루어졌던 당시 소경산수인물도(小景山水人物圖)의 화풍과 상통되는 것으로서, 그의 다른 선종화들인 「은사도(隱士圖)」나 「수로예구도(壽老曳龜圖)」등에서도 간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