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론법석(談論法席), 담선재(談禪齋)라고도 한다. 선에 대한 이치를 서로 공부하고 참선도 함께 하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려는 데 목적을 두었던 법회이다. 고려 초기부터 3년에 한번씩 국가의 주재로 보제사(普濟寺)에서 개최되었다. 『고려사』에는 1155년(의종 9)보제사에서 보제국담선재(普濟國談禪齋)를 열었다는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그 이전부터 정기적으로 열렸던 담선법회의 계속이었다.
그러나 보제사 외에도 명종 때 서보통사(西普通寺)와 광명사(廣明寺)에서 개최되었으며, 국가에서 주재한 법회가 창복사(昌福寺)와 대안사(大安寺)에서 열리고는 하였다. 서보통사의 담선법회는 별례담선법회(別例談禪法會)라고 하여 매년 4월 22일부터 7월 하순에 이르기까지 88일 동안 성대하게 열렸으며, 창복사의 담선법회는 이 절을 중창한 1211년(희종 7)부터 시작하여 매년 28일 동안 개최하는 것을 상례로 삼았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수선사(修禪社)를 세운 뒤부터는 이 법회에서 그가 크게 신봉하였던 『육조단경(六祖壇經)』과 『대혜서(大慧書)』를 중심으로 선의 이치를 서로 토론하게 되었다. 또한, 이 법회가 국가의 발전과 국민의 만복을 기원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으므로, 몽고병의 침입을 당하였을 때는 몽고병의 격퇴와 국가의 안태(安泰:평안과 태평)를 위하여 절실하게 기원하는 모임의 구실까지 담당하였다.
고종과 원종 때 특히 성행하였던 이 법회는 위득유(韋得儒)와 노진의(盧進義)가 고려에 와 있던 홍다구(洪茶丘)에게 이 법회가 원나라를 저주하기 위한 불온한 집회라고 말한 것이 발단이 되어 1278년(충렬왕 4)부터 3년 동안 금지당하였다. 중지되었던 이 법회는 그 뒤 다시 열리게 되었지만 원나라의 경계가 여전하였으므로, 1314년(충숙왕 1) 원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이 법회에 대한 오해가 없기를 당부하기도 하였다.
국가에서 주재한 담선법회 외에도 수미산의 광조사(廣照寺)와 가지산의 보림사(寶林寺)등 구산선문(九山禪門)의 각 본산을 위시하여 가지산 용담사(龍潭寺) 등의 말사에서까지 각 사원의 주재 아래 담선법회가 개최되었으며, 이를 국가 주재의 법회와 구별하여 총림(叢林)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