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무왕 때 창건된 사찰로서, ‘관궁사(官宮寺)’ · ‘궁사(宮寺)’ · ‘관사(官寺)’라고도 한다. 대관사는 상부대관에 있는 사찰이라는 데서 붙여진 것이고, 관궁사는 왕이 행유(行留)하는 궁사(宮寺)로 창건된 사찰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즉, 무왕은 궁궐 안의 내원당(內願堂)으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의하면 이 절은 639년(무왕 40)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절의 역사 및 폐사연대 등은 전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이곳에 남아 있는 높이 8.5m의 균형미를 갖춘 장중한 오층석탑만이 그 역사를 간략히 알려주고 있다. 이 탑은 1965년에 해체, 복원공사를 하였는데, 그 때 탑의 기단 초석에서 출토된 순금금강경판(純金金剛經板)과 유리로 만든 사리병, 청동여래입상 등 익산왕궁리 오층석탑 내 발견유물이 1966년 국보로 일괄 지정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이 유물들은 궁평 제석사지(帝釋寺址)의 기록유물과 비슷하다. 탑의 내부 건조양식이나 내부에서 발견되는 기와조각, 청동불상의 양식 등으로 보아 고려 초기의 건조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 절은 고려 초기까지는 그 명맥을 이어왔거나 중창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