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서법 ()

대동서법
대동서법
서예
유물
신라부터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대 명서가의 필적을 목판에 새겨 간행한 서첩.
정의
신라부터 조선 중기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 역대 명서가의 필적을 목판에 새겨 간행한 서첩.
개설

『대동서법』은 신라 김생(金生)으로부터 조선 17세기 전반의 오준(吳竣)에 이르기까지 51인이 쓴 76점의 필적을 목판에 음각(陰刻)으로 새겨 간행한 법첩(法帖: 명필의 글씨를 돌이나 나무에 새겨 만든 서첩)으로 모두 42장의 목판이 소요되었다.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이지정(李志定, 1588∼1650)이 편찬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내용

작가의 명단인 ‘대동서법목록(大東書法目錄)’이 권수에 실려 있다. 성씨 밑에 관직 또는 아호를 적었는데 이름을 차례로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신라는 김생(金生)과 최치원(崔致遠) 2인, 고려는 유공권(柳公權), 이암(李嵒), 한수(韓脩), 이제현(李齊賢), 설경수(偰慶壽), 정몽주(鄭夢周) 등 6인, 여말선초는 성석린(成石璘), 성개(成槪), 박초(朴礎) 3인, 조선은 하연(河演), 신장(申檣), 안평대군 이용(李瑢), 박팽년(朴彭年), 최흥효(崔興孝), 성임(成任), 강희안(姜希顔), 정난종(鄭蘭宗), 김희수(金希壽), 김노(金魯), 김인후(金麟厚), 정사룡(鄭士龍), 소세양(蘇世讓), 이황(李滉), 성수침(成守琛), 황기로(黃耆老), 송인(宋寅), 양사언(楊士彦), 이우(李瑀), 백광훈(白光勳), 김구(金絿), 한준(韓準), 성혼(成渾), 이의건(李義健), 이제신(李濟臣), 이산해(李山海), 이홍주(李弘冑), 김현성(金玄成), 한호(韓濩), 이인기(李麟奇), 백진남(白振南), 오억령(吳億齡), 이숙(李潚), 이현(李𥙆), 조문수(曺文秀), 강학년(姜鶴年), 신익성(申翊聖), 이지정(李志定), 조속(趙涑), 오준(吳竣) 등 40인으로, 모두 51인의 필적이 실려 있다.

서첩에 수록된 필적은 해서·행서·초서 3종의 서체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대부분 시문류(詩文類)로 당시(唐詩)의 비중이 가장 크다. 수록 작가와 내용이 1515년경 신공제(申公濟)가 간행한 『해동명적(海東名迹)』 및 1664년에 이우(李俁)가 간행한 『동국명필(東國名筆)』과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대동서법』을 편찬할 때 두 서첩을 참고하고 조선 중기 명필의 필적을 추가로 보완하여 편집·간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특징

『대동서법』에는 특히 조선 중기 16∼17세기 전반에 활동하며 송설체와 왕희지풍, 초서 등에서 각기 두각을 나타내었던 명필들의 필적이 실려 있어 당시의 다양한 서풍을 살피기에 유용한 자료이다.

현황

국립중앙도서관을 비롯한 여러 국학 관련 기관에 동일한 판본이 다수 소장되어 있다. 다만 일부 소장본의 경우 권수에 실린 ‘대동서법목록’이 양각으로 새겨진 경우도 있고, 본문의 글씨도 새김에 미세한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볼 때 원본을 모각한 번각본이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의의와 평가

신라에서 조선 중기까지의 명필들의 필적이 실려 있어 이전에 조선 초기까지 명필들의 필적이 실린 『해동명적』을 잇는 법첩으로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또한 앞선 시기에 간행된 것으로 여겨지는 『동국명필』보다 많은 필적이 실려 있어 조선 중기 명필들의 다양한 서풍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대동서법(大東書法)』(국립중앙도서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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