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명유고 ()

유교
문헌
조선시대 때의 무신, 이희량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82년에 필사한 시문집.
정의
조선시대 때의 무신, 이희량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82년에 필사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782년(정조 6) 이희량의 5대손 학전(學傳)이 편집·필사하였다. 서문과 발문은 없다.

서지적 사항

불분권 1책. 필사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규장각 도서에 있다.

내용

소 5편, 시 2수, 서(書) 3편, 첩(牒) 1편과 부록으로 이희량의 행록이 수록되어 있다. 「척화의소(斥和議疏)」는 1627년(인조 5) 청나라의 침입으로 인조가 강화도로 피신할 때 호종하면서 화의를 주장하는 대신들에 맞서서 끝까지 싸우자는 주장을 편 것이다. 그 명분은 비록 대명절의(對明節義)였지만, 무인으로서 구국항쟁의 기개와 전술 및 지략에서의 구체적인 계획 등은 주목할 만하다.

「청위선봉토로적소(請爲先鋒討虜賊疏)」와 「재청토적소(再請討賊疏)」는 1631년 청나라가 국경을 넘어와 가도(椵島)의 군대와 싸우고 있을 때 조정에서 강화를 빙자해 수수방관만 하고 있으므로, 가도의 군인들과 함께 청나라를 칠 수 있는 구체적인 전략을 제시하고 자신을 선봉장으로 보내달라고 청한 것이다.

「청축초항산성소(請築草項山城疏)」는 1633년에 올린 것으로, 비록 청나라와 강화를 체결했지만 만반의 방어태세를 준비하자고 주장하면서, 안주와 의주의 형세를 이용해 최북단 국경방위선을 설치하는 구체적인 지략을 상세히 설명하였다. 또한 연해(沿海)와 연강(沿江)의 주현에 저장된 군량과 군기 중 3분의 1을 차출해 우선 군자금으로 확보해 놓고, 압록강이 서쪽으로 굽어진 곳에 있는 초항산의 험준한 형세를 이용하여 산성을 쌓자는 내용을 매우 상세히 서술하였다.

서(書) 가운데 「상병조판서서(上兵曹判書書)」는 저자가 글을 잘한다는 이유로 변방의 장수를 뽑는 데에서 제외되자 자신을 서관의 요새지로 부임시켜달라고 탄원한 글로, 저자의 깊은 애국충정이 잘 나타나 있으며, 문장 또한 아주 간결·명료하면서도 논리정연하게 표현되어 있다. 「신포정사첩(申布政司牒)」은 관서지방의 기근과 한해가 극심해 백성들의 고통이 크고 경제가 피폐함을 서술하면서, 이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과 구체적인 시행방침 등을 제시한 글이다.

의의와 평가

이 책은 병자호란을 전후한 무인계급의 사고와 대응자세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집필자
한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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