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자대비(大慈大悲)의 불교정신에 입각하여 세워졌다. 개경(開京)에는 동쪽과 서쪽에 각각 하나씩 있어 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이라 하였으며, 서경(西京)에도 분사(分司) 1원이 있었다.
불교의 복전사상(福田思想)과 자비사상(慈悲思想)에 의하여 현약(賢藥)과 식량을 갖추어놓고 병자를 치료하였으며, 혹은 기아로 고통 받는 이들에게 의복과 식량을 나누어주던 곳이었다.
설립연대는 미상이나, 1036년(정종 2) 11월 동대비원을 수리하고 기한과 질병으로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을 수용하고 옷과 음식을 주었다는 기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전에 설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곳에는 사(使)·부사(副使)·녹사(錄事) 등의 관원이 정식으로 임명, 배치되었다. 1131년(인종 9) 대비원을 수리하고 백성의 질병을 치료하게 하였으며, 1188년(명종 18) 8월 관동지방의 수재민을 위하여 사신을 그곳에 보내어 동서대비원에서 방출한 미곡으로 널리 구호에 나서기도 하였다.
1311년(충선왕 3) 전지(傳旨)를 내려 병자를 치료하고 기아자에게 식량을 나누어주었으며, 1371년(공민왕 20) 12월 의약을 갖추어 그 운영에 만전을 기하는 등, 고려 말까지 대비원은 자혜사업을 통한 불교의 귀의 및 친밀감을 깊게 해주는 기관으로서 그 구실을 다하였다. 이 대비원은 조선시대 초기에도 설치되었으나 1414년(태종 14) 활인원(活人院), 1466년(세조 12) 활인서(活人署)로 개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