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청년외교단 ()

근대사
단체
191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이칭
이칭
청년외교단, 청년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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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19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개설

청년외교단·청년외교회로 약칭하기도 한다. 1919년 6월 상순 이병철(李秉徹)·조용주(趙鏞周)·연병호(延秉昊)·송세호(宋世浩)·안재홍(安在鴻) 등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지하기 위해 경성부 원은동(援恩洞) 등지에서 수 차례의 회합을 가진 뒤 결성하였다.

설립목적

이 단체의 목적은 상해 임시정부에 국내 상황을 통보하는 것, 독립운동자금을 모집, 전달하는 것, 각종 인쇄물을 작성, 반포해 독립의 여론을 조성하려는 것 등에 있었다. 결성 초기에는 임원진이 결정되지 않았으나 이병철·송세호·정낙륜(鄭洛倫) 등이 회원을 규합하였다.

총무에 이병철·안재홍, 간사장에 김홍식(金鴻植)·김태규(金泰圭), 외교부장에 김연우(金演祐), 외교특파원에 조용은(趙鏞殷), 외교원에 조용주·연병호, 편집원에 이의경(李義敬), 상해지부장에 송세호, 회령지부장에 나대화(羅大化), 대전지부장에 이호승(李浩承), 충주지부장에 윤우영(尹宇榮)이 선임되었다.

그 밖에 특별단원 정낙륜과 단원으로 용창헌(龍昌憲)·나창헌(羅昌憲)·이강하(李康夏)·유흥환(柳興煥)·이경하(李敬夏)·유흥식(柳興植)·정석희(鄭錫熙)·정태영(鄭泰榮)·안우선(安佑璿)·이일선(李日宣)·이종욱(李鍾郁) 등이 있었다.

기능과 역할

8월 상순경 총무 안재홍·이병철은 이종욱을 상해에 파견해 임시정부의 국무총리 이승만(李承晩)에게 현금 550원의 독립운동자금과 건의서를 제출하였다.

건의서의 내용은 내각의 각부 총장은 상해에서 정무의 통일을 도모할 것, 각국 정부에 직접 외교원을 특파해 외교 사무를 확장할 것, 일본정부에도 파견해 독립을 정면으로 요구할 것, 인원을 파견해 국내의 각 단체와 종파간 대표자와 협의한 뒤 경성에 교통본부를 설치해 일체 활동의 중추기관으로 삼을 것 등이었다.

이에 국무총리대리 안창호(安昌浩)는 사의를 표하는 감사장을 보내왔으며, 이병철은 재무총장 최재형(崔在亨)의 명의로 경기도 애국금수합위원에 임명되었다.

또, 8월 28일을 국치기념일이라 하여 조용주가 기초한 ‘국치기념경고문’과 이의경이 쓴 『외교시보』를 안우선이 인쇄해 서울과 기타 각지에 조직을 통해 유포해 국민에게 국내 외정세를 알렸다.

유흥식은 6월에, 김홍식·이강하는 9월에, 김태규·유흥환·연병호는 10월에, 정석희는 11월 임시정부와의 연락을 위해 상해로 갔고, 조용은은 임시정부의 명에 따라 파리로 파견되었다.

이 단체는 다른 독립운동단체와도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이종욱은 8월 상순 임시정부의 안창호 외 수십 명의 발기로 조직된 대한적십자사의 주요 인물이었다.

이병철은 이종욱의 권유로 이 회의 명예회원이 되어 회의 선언서를 송세호와 협의해 보관 배포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병철은 대한애국부인회의 제규칙을 기초하고 특별회원으로서 수백원을 기증하는 등 중심 인물로 활약하였다.

이 때문에 대한애국부인회를 비밀리에 조사하던 경상북도 경찰부가 이병철 등의 활동을 탐지하였다. 이로 인해 11월 하순, 이병철·안재홍·김홍식·김연우·정태영·송세호·윤우영·안우선·이일선 등이 붙잡혔고 이 단체는 해체되었다. 이 사건으로 안재홍 등은 6개월간 대전감옥에서 복역하였다.

의의와 평가

이 단체는 상해임시정부 연통부(聯通府)의 업무를 경상도와 그 밖의 지역에서 대신했고, 다른 단체와도 긴밀하게 관계를 가지면서 활동한 3·1운동 직후의 중요 독립운동단체였다.

참고문헌

『한국사』 21(국사편찬위원회, 1978)
『삼일운동비사(三一運動秘史)』(이병헌, 시사시보사, 1959)
『朝鮮獨立運動』 Ⅰ 分冊(金正明 編, 原書房, 1967)
『朝鮮獨立運動』 Ⅱ(金正明 編, 原書房, 1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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