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독립부인청년단이라고도 하였다.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원 곽치문(郭致文)의 부인 박치은(朴致恩)이 여자도 남자와 동등하게 독립운동을 하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평안남도 대동군 임원면에 있는 북장로교 경영의 사립학당 교사 추도일(秋道一)과 의논한 끝에 찬동을 얻어 동지를 규합, 조직하였다.
박치은은 신앙이 독실하고 열성적이며 유망한 교육자인 추도일을 단장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부단장직을 맡았으며, 회원은 강희성(姜熙成) 외 13명이었다.
이 단체는 군자금을 모금하여 상해임시정부에 송부하고 국외독립운동요원이 밀입국하여 활약하게 될 때 여비 및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고, 투옥된 애국지사와 그 가족들에 대한 구호사업 등을 전개하였다.
1921년 4월 추도일의 집에서 동지들과 독립운동에 관한 비밀협의를 하다가 붙잡혔다. 단장인 추도일과 부단장인 박치은은 각각 징역 2년형을 받았다. 그리고 박치은의 남편도 투옥되었으며, 경찰에서 갓난아이에게 젖을 물리지 못하게 하여 굶어 죽는 참상까지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