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때 양산 통도사의 건립 당시 창건하였다고 하며 전성기에는 총 202칸의 당우와 불상 10여구, 오백나한상 등이 봉안되어 있었으며, 승려도 1,000여 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1876년 소실된 뒤 오백나한상은 강원도 금강산 유점사(楡岾寺)의 승려들이 와서 가져갔다고 한다.
당시 금강산에 있던 승려 497명이 8일 만에 이 절에 와서 오백나한상을 1구씩 등에 업고 유점사로 갔으나 남은 3구는 힘이 센 세 사람이 하나씩 더 지고 갔다. 그러나 유점사에 도착한 다음날 그 수를 헤아려보니 3구가 모자랐는데, 함께 업혀온 3구가 승려들의 무성의함을 원망하고 떠났다는 설화가 전한다.
부속암자로는 청련암(靑蓮庵)·원통암(圓通庵)·망월암(望月庵)·굴암(掘庵)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원통암과 청련암만이 남아 있으며, 청련암에는 이 절에서 옮겼다는 탱화가 있다.
2001년 사찰을 정비하는 불사를 진행해 2016년 대웅보전 낙성식을 진행했다. 당우로는 대웅보전과 미륵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