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조선시대사
제도
고려 · 조선시대 한양과 경기도 일원에 설치된 나루.
이칭
이칭
제(濟), 과(過)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 · 조선시대 한양과 경기도 일원에 설치된 나루.
내용

도와 진(津)은 강폭의 넓고 좁음에 따라 구별하는데, 도는 제(濟) 또는 과(過)라고도 하였다.

인마의 내왕 또는 물자운반을 위한 수상교통로, 범죄인 기찰(譏察)을 위한 초소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고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고려시대부터 제도적으로 설치되어 예성강의 벽란도(碧瀾渡), 임진강의 하원도(河源渡), 한강의 사평도(沙平渡)·양화도(楊花渡) 등이 있었다.

서울을 한양으로 천도한 조선 초기는 한강에 한강도와 양화도만 설치, 운용하였으나 점차 증설되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용인·충주로 통하는 한강도, 광주(廣州)로 통하는 삼전도(三田渡), 시흥·수원으로 통하는 노도(路渡 : 鷺梁), 양천을 거쳐 강화도로 빠지는 양화도와 낙하도(洛河渡)·임진도(臨津渡)·벽란도 등 7곳을 두었고, 여기에는 종9품의 도승(渡丞)을 배치하도록 하였는데, 이 가운데 벽란도는 경기도수운판관이 겸직하였다.

도에는 관선뿐만 아니라 사선도 운행되었으며, 관리자인 도승과 다수의 진부(津夫 : 津尺)를 두고 도전(渡田)을 주어 운영하게 하였다.

참고문헌

『경국대전(經國大典)』
『역주경국대전(譯註經國大典)』-주석편-(한우근 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6)
『한강사(漢江史)』(서울특별시사편위원회, 1985)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