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 진(津)은 강폭의 넓고 좁음에 따라 구별하는데, 도는 제(濟) 또는 과(過)라고도 하였다.
인마의 내왕 또는 물자운반을 위한 수상교통로, 범죄인 기찰(譏察)을 위한 초소로서의 기능을 발휘하고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고려시대부터 제도적으로 설치되어 예성강의 벽란도(碧瀾渡), 임진강의 하원도(河源渡), 한강의 사평도(沙平渡)·양화도(楊花渡) 등이 있었다.
서울을 한양으로 천도한 조선 초기는 한강에 한강도와 양화도만 설치, 운용하였으나 점차 증설되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용인·충주로 통하는 한강도, 광주(廣州)로 통하는 삼전도(三田渡), 시흥·수원으로 통하는 노도(路渡 : 鷺梁), 양천을 거쳐 강화도로 빠지는 양화도와 낙하도(洛河渡)·임진도(臨津渡)·벽란도 등 7곳을 두었고, 여기에는 종9품의 도승(渡丞)을 배치하도록 하였는데, 이 가운데 벽란도는 경기도수운판관이 겸직하였다.
도에는 관선뿐만 아니라 사선도 운행되었으며, 관리자인 도승과 다수의 진부(津夫 : 津尺)를 두고 도전(渡田)을 주어 운영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