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로 유학하여 신라승 원측(圓測)의 제자가 되었으며 유식학(唯識學)의 연구에 몰두하였다. 692년(효소왕 1) 귀국할 때 ‘천문도(天文圖)’를 가지고 와 왕에게 바쳤다. 귀국 후의 활동은 전하지 않으나 유가종의 대덕 태현(太賢)의 스승이라는 설도 있다.
현존하지는 않지만 13종의 저술을 남겼는데, 『반야이취분경소(般若理趣分經疏)』 1권, 『대반야경적목(大般若經籍目)』 2권, 『금강반야경소(金剛般若經疏)』 1권, 『서방극락요찬(西方極樂要讚)』 1권, 『성유식론요집(成唯識論要集)』 14권, 『성유식론강요(成唯識論綱要)』 13권, 『섭대승론세친석론소(攝大乘論世親釋論疏)』 16권, 『변중변론소(辨中邊論疏)』 3권, 『인명입정리론소(因明入正理論疏)』 2권, 『대인명론초(大因明論鈔)』 2권, 『대인명론소(大因明論疏)』 2권, 『성교약술장(聖敎略述章)』 1권, 『천태산지자대사별전(天台山智者大師別傳)』 1권 등이 있다.
저술을 통하여 볼 때 유식학을 근본사상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반야부 계통의 경전을 깊이 연구하였고, 불교 논리학인 인명학(因明學)에 정통하였으며, 당시 신라 불교의 큰 조류였던 정토신앙(淨土信仰)에도 관심이 컸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