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어진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해동통보(海東通寶)·삼한통보(三韓通寶) 등이 주조된 숙종 때이거나 또는 그 이전의 성종·목종 무렵일 것으로 추정된다. 1910년대 초에 개성 부근의 고려시대 고분에서 출토됨으로써 그 실물이 확인되었다.
이에 의하면 지름 24∼25㎜의 원형으로 가운데에는 5∼6㎜의 크기의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으며, 한 면에만 ‘東國通寶’라고 새겨져 있고 그 뒷면에는 아무런 글자나 무늬도 없다.
그런데 글자의 배열이 일정하지 않아 대독(對讀)하는 것과 회독(回讀)하는 것의 두 가지가 있으며, 서체(書體)도 다양하여 회독하는 것은 예서체로, 대독하는 것은 전서체·예서체·해서체·행서체·팔분서체(八分書體) 등 여러 가지로 쓰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