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녕 단결 유적 ( )

고대사
유적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 동녕현(東寧縣) 단결촌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 집터.
이칭
이칭
단결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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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 동녕현(東寧縣) 단결촌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 집터.
개설

동녕단결유적은 1977년흑룡강성문물고고공작대(黑龍江省文物考古工作隊)와 길림대학 역사계에서 구성한 동녕고고대(東寧考古隊)에 의해서 발굴조사되었다. 당시 동녕현 대성자무덤도 함께 조사가 이루어졌다. 단결유적은 크게 두 시기의 문화층으로 구분된다. 이른 시기의 문화층은 한대(漢代) 옥저시기의 것이고, 늦은 시기의 문화층은 발해시기의 것인데, 발해시대 문화층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내용

단결유적이 위치하는 단결촌은 동녕현 대성자촌(大城子村)에서 남서쪽으로 약 10㎞ 떨어져 있다. 이 유적은 단결촌 북쪽을 지나는 대두천하(大肚川河) 남안의 대지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 유적에서는 모두 4기의 소형 주거지가 발굴되었는데, 모두 발해시대 평민이 거주하던 집터이다. 집터의 평면 형태는 긴네모모양〔長方形〕으로 길이 4∼5m, 너비 3∼4m이며, 실내 면적은 15∼20㎡이다. 반지하식으로 땅을 수직으로 굴착하여 바닥을 조성하였는데 바닥까지 남아 있는 깊이는 30㎝ 정도이다. 집 안에는 ‘ㄱ’자 형태의 온돌을 설치하였다. 온돌은 서벽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간 뒤 동쪽으로 돌아서 북벽에 연하여 연결되어 집터의 동북쪽 모서리까지 이어진다. 온돌 상부에는 판석을 깔았는데, 너비는 약 1m이며, 보통 2줄의 연도(烟道)를 가지고 있다. 연도 벽은 판석과 자갈을 쌓아 만들거나 원 땅을 파내는 방법으로 만들었다. 온돌 아궁이는 서벽 가운데 또는 그 남쪽에 두었다. 출입문은 남벽 한 가운데에 나 있으며 흙을 계단식으로 쌓아 안팎으로 드나들게 하였다.

이 유적에서 확인된 층위와 출토된 유물을 통해서 볼 때, 유적은 다시 2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발해 전기의 토기는 보통 조잡한 편이며, 대부분 손으로 빚어 만들었다. 토기의 색조는 황갈색 또는 흑갈색이다. 전형적인 형태의 토기로는 깊은바리모양토기〔深鉢形土器〕가 있는데, 입이 넓게 벌어지고 목이 긴 형태이다. 이 시기에 해당하는 토기는 육정산고분군(六頂山古墳群)에서 출토한 것들과 비슷하다. 반면, 발해 후기의 토기는 고운 진흙 바탕흙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회색을 띠는 토기가 대부분이다. 소성 온도는 높은 편이며 토기의 기형도 꽤 다양하다. 토기의 종류로는 단지〔罐〕, 동이〔盆〕, 가로손잡이가 달린 시루, 잔〔杯〕, 주발〔碗〕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단결유적의 발해 주거지 조성연대는 발해 제3대 문왕에 의하여 상경(上京)으로 천도가 이루어진 이후의 시기로 여겨진다.

참고문헌

『渤海考古』(魏存成, 文物出版社, 2008)
『渤海遺蹟』(朱國忱·朱威, 文物出版社, 2002)
『文物考古工作三十年 1949∼1979』(文物編輯委員會, 文物出版社, 1979)
「黑龍江東寧縣小地營遺址渤海房址」(黑龍江省文物考古硏究所,『考古』2003年 3期)
집필자
정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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