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화 마권자고성 ( )

고대사
유적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대포시하진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 평지성 · 성곽터.
정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대포시하진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 평지성 · 성곽터.
개설

성터는 돈화시 대포시하진 낭재하촌(浪才河村)에서 서쪽으로 약 2.5㎞ 떨어져 있는 부이하(富爾河)의 충적평야 위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말발굽 형태로 동·남·서 3면이 부이하에 둘러싸여 있는데, 강 남쪽은 경사가 급한 높은 산으로 되어 있어 천연의 방어선을 형성하고 있다. 북쪽은 산간의 좁은 평야와 접하고 있다.

내용

성터의 평면 형태는 대체로 네모모양〔方形〕이며, 서벽 317m, 북벽 208m, 동벽 209m, 남벽 198m로 성벽 길이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성벽의 남아 있는 높이는 2∼5m이며, 아래 너비는 약 8m, 위 너비는 1∼1.5m로 성벽의 보존 상태는 꽤 양호한 편이다. 현재 동벽과 남벽, 북벽에는 각각 1곳의 입구가 나 있는데, 원래는 동문만 있었으며 북쪽과 남쪽은 1950년대 초 경지 정리의 편의를 위하여 튼 것이라고 한다. 동문은 동벽에서 약간 남쪽으로 치우친 곳에 위치하며 지름 약 13m의 옹성(甕城)이 구축되어 있다. 또한 각 모서리마다 1개씩의 각대를 설치하였고, 동벽과 서벽, 북벽의 약간 동쪽에 치우친 곳에는 각 1개씩의 치(雉)를 축조하였다. 그밖에도 동북 모서리 밖과 서북 모서리 밖에는 또 다른 성벽과 보루 형태의 시설을 부가하여 쌓았다. 이는 이 성의 유일한 적 방향인 북쪽의 방어강화를 위하여 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성 안은 오랜 동안의 경작활동으로 인하여 지표면 상의 유적은 이미 파괴되었는데, 50여 년 전에는 집터가 매우 많았으며 어렴풋하게 그 벽의 기초도 남아 있었다고 한다. 성 안에서 확인된 유물로는 토기조각, 동전, 철제 솥편, 갈돌, 조개, 말 이빨 등과 같은 것이 있다. 유물의 특징을 통해 볼 때 발해시대∼요·금(遼金)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마권자고성은 부이하 중류 유역에 자리하고 있는 평지성(平地城)으로서 돈화시 남쪽을 지나는 산간 도로의 중심부로 볼 수 있다. 북쪽으로는 돈화시와 직접 연결되며, 서쪽에 있는 화전(樺甸)시, 동북쪽의 안도(安圖)시, 동남쪽의 화룡(和龍)시를 잇는 중간 지점에 위치하여 교통로상의 주요 거점 역할을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匯編』(王禹浪·王宏北 編著, 哈爾濱出版社, 1994)
「馬圈子古城」(吉林省文物志編委會 主編,『敦化市文物志』, 1985)
「吉林敦化牡丹江上游渤海遺址調査記」(王承禮,『考古』1962年 11期)
집필자
정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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