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룡 북대지 고분군 ( )

고대사
유적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和龍市) 팔가자진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이칭
화룡북대고분군(和龍北大古墳群)
정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화룡시(和龍市) 팔가자진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화룡 북대지고분군은 화룡시에서 북동쪽으로 약 20㎞ 떨어진 팔가자진의 북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남쪽은 해란강(海蘭江)과 마주하고 있으며, 서쪽은 산기슭과 연결되어 있다. 반면 동쪽과 북쪽은 평야지대와 접하고 있다. 이 고분군에서 북동쪽으로 약 5㎞ 떨어진 곳에는 서고성(西古城)이 있고, 동쪽으로 약 4㎞ 떨어진 곳에는 하남둔고성(河南屯古城)이 자리하고 있다. 고분군의 분포 범위는 서쪽에 있는 산기슭에서 부터 동쪽으로 약 800m, 해란강에서 북쪽으로 약 300m 범위에 걸쳐 분포하며 그 수는 400여 기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은 파괴가 심하게 이루어져 대부분 사라진 상태이다.

고분군에 대한 조사는 그동안 여러 차례 실시되었다. 1960년과 1963년 각각 1기가 조사된 적이 있으며, 1964년에는 중조고고연합고찰단(中朝考古聯合考察團)이 고분군을 조사하기도 하였다. 1973년 8월에 연변박물관과 화룡현문화관에서 보존 상태가 양호한 54기의 무덤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후 1988년에도 11기의 무덤이 발굴조사되었다.

내용

북대지고분군의 무덤들은 모두 지하에 조영되었으며, 대부분 외방〔單室〕으로 된 돌방흙무덤〔石室封土墓〕이다. 봉토는 대부분 소실되었으며 덮개돌〔上石〕이나 무덤 벽석도 노출되거나 훼손되었다. 널방은 대부분 긴네모모양〔長方形〕이며, 가공을 하지 않거나 거칠게 가공한 크기가 다른 판석이나 막돌, 자갈돌을 사용하여 널방〔玄室〕을 축조하였다. 무덤 바닥에는 진흙을 약 10㎝ 두께로 덮거나 모래 또는 석판을 깔아서 바닥을 처리하였다.

무덤의 구조는 널길의 유무에 따라서 두 종류로 구분된다. 먼저 널길이 있는 것은 보통 규모가 크고 평면 형태는 긴네모모양이다. 널길은 모두 남쪽을 향해 있으나 위치는 남벽 중앙이나 동벽에 치우쳐 축조되었다. 무덤 크기는 길이 2.3∼2.9m, 너비 1∼1.7m, 높이 60∼85㎝이다. 천장 구조는 평천장과 모줄임천장 두 종류가 있다. 천장 덮개돌은 보통 3∼4장의 큰 판돌을 사용하고 벽석과 덮개돌 사이의 공간은 작은 돌을 사용하여 채워넣었다. 널길이 없는 무덤은 보통 규모가 작고 구조도 간단하다. 평면 형태는 긴네모모양이며 보통 바닥 길이 2∼2.9m, 너비 76㎝∼1.1m, 깊이 40㎝∼1m이다. 무덤 벽은 돌을 차곡차곡 쌓아 만들거나 판석을 세워서 축조하였으며, 무덤 위쪽은 큰 판돌을 가로로 놓아 덮었다. 무덤 입구는 남쪽에 두었는데, 막돌을 사용하여 쌓거나 판석을 세웠다. 때로는 돌과 흙을 섞어 입구를 막기도 하였다. 무덤 바닥은 보통 한 층으로 된 황갈색 진흙을 깔거나 모래 또는 판석을 깔기도 하였다.

매장 습속은 1차장과 2차장으로 구분되며, 이는 다시 단인장(單人葬)과 다인장(多人葬)으로 나뉜다. 1차장의 경우 바로눕혀묻기〔仰身直葬〕가 대부분이고, 널을 많이 사용하였다. 널의 크기는 보통 길이 1.8∼1.95m, 너비 40∼50㎝, 높이 약 30㎝이다. 이 가운데 크기가 큰 널의 경우 그 길이가 2.4m, 너비 60㎝에 이르기도 한다. 관재의 두께는 약 3∼4.5㎝이다. 2차장의 경우 보통 3∼5개체의 사람뼈가 확인되나 많은 것은 10개체에 이르기도 한다. 대체로 장법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이 가운데 1, 2차 혼합 다인장이 많은 편이다.

출토된 유물로는 은기, 청동기, 철기, 삼채(三彩), 토기, 방직품 등 다양하다. 1988년 7호 무덤에서 출토된 삼채 주발과 병은 발해의 대표적인 삼채그릇으로 손꼽힌다. 청동제품은 연꽃무늬장식, 물고기모양장식, 거울, 팔찌, 가위, 비녀 등이 있다. 그밖에도 화살촉, 칼, 고리, 못 등의 철기가 있으며, 은비녀 등의 은기와 ‘불(不)’, ‘정(井)’, ‘태(泰)’, ‘목(木)’자 등이 새겨진 토기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북대지고분군은 발해 5경 가운데 하나인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로 추정되는 서고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 묻힌 사람들은 바로 서고성과 그 주변에 살던 발해인의 무덤들로 판단된다. 이 고분군은 지금까지 발굴조사가 가장 많이 이루어진 곳 가운데 하나로서 발해의 무덤 축조 방식과 매장 습속 등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라고 평가된다.

참고문헌

「1988년에 발굴한 북대발해무덤 및 삼채그릇」(정영진,『발해사연구』2, 연변대학출판사, 1991)
「북대발해무덤연구」(엄장록·박용연,『발해사연구』2, 연변대학출판사, 1991)
『和龍縣文物志』(吉林省文物志編委會, 1984)
「吉林省和龍縣北大渤海墓葬」(延邊博物館,『文物』1994年 1期)
「和龍北大渤海墓葬淸理簡報」(延邊朝鮮族自治州博物館·和龍縣文化館,『東北考古與歷史』1, 文物出版社, 1982)
집필자
정원철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