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호초촌고분군은 1962년 4월 길림성박물관과 집안현 문물보관소에 의해 조사되었으며, 1981년 10월에는 노호초 수력발전소가 건설됨에 따라 집안현 문물보관소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다. 현재는 수력발전소로 인해 수몰되어 있다.
고분군은 노호초촌에서 서쪽으로 200m 떨어져 있는데, 마을 북쪽에 있는 흑타산(黑駝山)에서 남북방향으로 뻗어나온 길고 좁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동·남·서쪽 3면은 압록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북한의 위원군(渭源郡)과 마주하고 있다. 고분군의 분포 범위는 약 3,000㎡이다.
모두 17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는데, 이 가운데 5기는 유형을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하게 파괴되어 나머지 12기에 대해서만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무덤의 유형은 석분형 돌방무덤〔石墳形石室墓〕와 돌방흙무덤〔石室封土墓〕두 가지가 있다. 12기 중 10기가 석분형 돌방무덤인데, 일명 봉토동실묘(封土洞室墓)라고도 한다. 이것은 크고 작은 괴석(塊石)으로 널방의 네 벽을 쌓은 뒤 그 위에 편평한 판석을 1개 혹은 여러 개를 덮어 천장을 마무리한 것으로 규모가 작고 구조도 비교적 간단하다. 나머지 2기는 전형적인 돌방흙무덤이다.
두 유형은 매장부의 수에 따라 널방이 하나인 외방무덤〔單室墓〕과 독립된 2개의 널방을 지닌 두방무덤〔雙室墓〕으로 다시 구분된다. 널길〔羨道〕은 한쪽에 치우쳐 있는 경우〔刀形〕와 중앙에 있는 경우〔鏟形〕로 나눌 수 있는데, 여러 무덤의 통로 입구에서는 영문석(迎門石)이 발견되었다. 천장은 모줄임천장과 평천장으로 나뉜다. 무덤 대부분은 일찍부터 도굴당하여 출토된 유물은 많지 않다. 출토된 유물로는 석기, 철기, 은기, 토기 등이 있다. 석기는 모두 M1 동쪽 널방에서 출토되었는데, 갈아서 만든 돌칼조각과 돌화살촉〔石鏃〕이다. 철기로는 M2에서 확인된 쇠손칼〔鐵削〕과 M4에서 확인된 쇠화살촉〔鐵鏃〕이 있다. M4에서는 은반지가 함께 출토되었다. 토기조각은 아가리조각과 바닥조각 등이 확인되는데, 대부분 민무늬이며 바탕흙에 모래가 많이 함유된 갈색토기로서 소성도는 그리 높지 않다.
노호초촌고분군에서 확인된 무덤 양식은 고구려고분의 변천 과정을 통해 볼 때 이르면 3세기대 이미 출현하여 6세기 중엽 주류를 형성하여 고구려 후기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군에서 확인된 영문석은 고구려 후기 무덤인 오회분 4호묘와 5호묘, 통구 12호분 등 대형 고분의 널길 중앙에서 확인되었는데, 소형 봉토분에서 발견된 것은 아직까지 노호초촌고분군 밖에 없다. 고분의 구조를 통해 볼 때, 영문석은 반드시 필요한 시설은 아니며, 당시 고구려의 장속(葬俗)에 나타난 관념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