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화 오동성지 ( )

고대사
유적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초기 도성으로 추정되는 성곽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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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초기 도성으로 추정되는 성곽터.
개설

오동성은 돈화분지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돈화시의 동남부에 위치하는데, 이곳은 목단강 북안의 대지에 해당한다. 1956년 길림성박물관에서 유적을 조사하였으며, 1958년 7월에는 동북인민대학(현 吉林大學) 역사계에서도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 뒤에도 동북사범대학 등에서 여러 차례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2년 8∼10월, 2003년 8월에는 길림성문물고고연구소와 길림대학 변강고고연구중심(邊疆考古硏究中心)이 연합하여 오동성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2002년 발굴 지점은 오동성 서쪽에서 약간 북쪽에 치우쳐 있는 곳(외성 서벽에서 안쪽으로 95m, 남벽에서 안쪽으로 105m 떨어진 지점)이며, 발굴 구역의 북서쪽으로 일부 확대 조사를 실시하였다. 2003년에는 오동성 서벽을 절개하여 발굴조사하였다.

내용

오동성의 전체 평면 형태는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진 ‘회(回)’자형이다. 먼저 외성의 평면 형태는 긴네모모양〔長方形〕이다. 성벽의 동서 길이는 약 400m, 남북 너비는 약 200m로 전체 둘레는 약 1.2㎞이다. 이 가운데 동벽은 일찍부터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고, 일제시대 2곳의 제재소(制材所)가 들어서면서 성안의 파괴가 더욱 심화되었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 파괴가 이루어져 현재는 북벽도 남아 있지 않으며 남벽 일부와 서벽 일부 성벽만 남아 있는 정도이다. 성벽은 흙을 다져 만들었으며, 성벽 너비는 8∼11m, 남아 있는 높이는 1.5∼2.5m이다. 2003년 조사된 바에 따르면 서벽의 아래 너비는 9.62m, 위 너비는 5.26m, 남아 있는 높이는 1.12m이다. 성문은 현재 남문만 확인되었는데 옹성(甕城) 구조로 축조되었다. 북벽에도 동쪽으로 약간 치우친 곳에 트인 곳이 있었지만 성문이었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다. 서벽에는 문을 만들지 않았다. 치(雉)는 남벽과 북벽에 3개, 서벽에는 2개를 설치하였다. 성벽 밖으로는 해자를 팠는데 지금은 남벽 밖의 해자만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내성은 바른네모모양〔正方形〕이며 외성 가운데에서 약간 서쪽으로 치우친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곳은 성 안에서 지세가 약간 높은 곳이다. 내성 역시 여러 해 동안 성 안에서 경작이 이루어지면서 흔적만 남아 있는 정도이다. 외성 서벽과 내성 서벽과의 거리는 90m이며, 내성 성벽은 한 변의 길이가 약 80m로 전체 둘레는 약 320m이다. 성벽은 역시 흙을 다져 만들었으며 성벽 밖으로는 외성과 동일하게 해자를 설치하였다.

한편 2002년과 2003년의 중국 측 발굴조사에서는 온돌이 딸린 집터 2기와 서벽을 절개하여 조사하였다. 이 조사에서 확인된 유적의 층위와 출토 유물을 근거로 집터는 금대(金代) 말기의 것이라고 주장하였고, 성벽 역시 금대의 토층에서 출토된 것으로 보고하였다.

의의와 평가

오동성 주변으로는 통구령산성과 성산자산성 등을 비롯한 여러 성곽이 자리하고 있으며, 육정산고분군과 강동24개석과 같은 발해 시기의 여러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따라서 오동성은 지금까지 발해의 첫 도읍인 ‘구국(舊國)’의 도성으로 이해되고 있다. 최근 중국 측에서 발굴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오동성은 발해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금대의 성곽으로 파악하고 있어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내린 결론이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 오동성의 축조시기와 성격 등에 대한 좀 더 세밀한 연구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발해문화』(주영헌, 사회과학출판사, 1971)
「吉林敦化市敖東城遺址發掘簡報」(吉林大學邊疆考古硏究中心·吉林省文物考古硏究所,『考古』2006年 9期)
「渤海早期都城遺址的考古學探索」(王培新·傅佳欣,『吉林大學社會科學學報』2003年 3期)
「渤海初期都城考」(李健才,『北方文物』2002年 3期)
「渤海舊京城址調査」(單慶麟,『考古』1960年 4期)
집필자
정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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