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하 제1080호분은 우산(禹山) 남쪽 기슭을 따라 펼쳐진 완만한 지대의 남쪽 가장 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고분 앞쪽으로는 큰 길을 사이에 두고 넓은 통구평야가 펼쳐져 있다. 동쪽으로 50m 떨어진 지점에 돌무덤(石墳)계통의 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고구려 벽화가 발견된 우산하 제1041호분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 고분은 1976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우산하 제1080호분은 대형의 돌방흙무덤〔石室封土墳〕으로 크기는 봉분 둘레 100m, 높이 10m이다. 무덤 내부 구조는 널길〔羨道〕, 앞방〔前室〕, 이음길, 널방〔玄室〕으로 이루어진 두방무덤〔雙室墓)이다. 발굴조사 당시 봉분의 동남쪽 모서리에 나 있던 도굴구덩이에서 석비(石碑)가 조사되었는데, 화강암 재질이며 비석 바닥이 하늘을 향한 채로 발견되었다. 이 석비는 위가 둥글고 아래는 네모나 있는 형태인데, 전체 높이는 1.6m, 석비의 아래 바닥 너비는 가로 97㎝, 세로 73㎝이다. 원래는 봉분 정상부에 세워져 있던 것이 도굴에 의해 봉토가 유실되어 넘어지면서 도굴갱에 거꾸로 파묻혔던 것으로 여겨진다. 발굴조사 후 석비는 현재와 같이 무덤 앞에 세워놓았다.
석비의 기능에 대해서는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형편인데, 수묘인(守墓人)을 표기하는 용도로 세웠다는 설, 천국으로 통하는 통천주(通天柱)라는 설 등이 있다. 석비에서 명문은 발견되지 않았다. 명문이 남아 있지 않은 원인에 대해서는 명문을 새기지 않고 붓으로 썼기 때문이라는 설과 원래부터 명문이 없는 석비라는 설 등이 있다. 이와 같이 무덤에서 석비가 확인된 것은 현재까지 이 무덤과 산성하 제1411호분 등 2곳 밖에 없다. 널방의 천장구조는 평행 1층, 삼각 1층의 평행삼각고임으로 되어 있다. 널방 안에는 돌널받침〔石棺臺〕이 3개 놓여 있는데, 가장 오른편의 널받침이 다른 2개의 널받침에 비하여 작고 낮다. 도굴이 심하게 이루어져 고분 안에서는 철제·금동제 장식조작 10여 점의 유물만이 수습되었다.
우산하 제1080호분은 비슷한 형태의 석비가 발견된 산성하 제1411호분과 흔히 비교된다. 산성하 제1411호분은 무덤의 크기와 구조를 통해 볼 때, 중소 귀족의 무덤으로 여겨지며, 그 편년은 대체로 5세기 중·후기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비해 우산하 제1080호분은 규모가 훨씬 방대하여 고구려의 왕족 또는 귀족 무덤으로 판단되며 대체로 6세기 중·후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