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수에 첨부된 「팔도총도(八道總圖)」 1매, 각 도의 첫머리에 첨부된 「도별도(道別圖)」 8매를 합한 9매의 지도를 말한다. 우리 나라 전도인 「팔도총도」와 「도별도」를 『동국여지승람』과 별도로 만든 지도책도 후대에 나타난다. 「팔도총도」와 「도별도」의 판심(版心)에 ‘동람도(東覽圖)’라고 판각되어 있어서 ‘동람도’라고 불리게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은 조선 세종 이래의 관찬지지사업(官撰地志事業)의 결실이며, 그 제1고본(第一稿本)은 1481년(성종 12)에 서거정(徐居正) 등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지도는 제1고본에서부터 첨부되었다. 현재 전하는 「동람도」는 1531년(중종 25)에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첨부된 것으로 임진왜란 후에 복간한 것이다.
「동람도」는 모두 목판본이며 지도의 정확한 윤곽보다는 목판의 크기와 모양에 맞도록 그려져 있다. 특히 「팔도총도」는 동서의 폭이 남북의 길이보다도 넓어서 우리 나라의 모양이 남북으로 심히 축소되어 있다. 압록강과 두만강이 거의 직선상에 있으며 북부 지방이 특히 남북으로 압축되어 있다. 「도별도」의 모양은 전도와 같이 심하지 않다.
「팔도총도」는 우리 나라의 진산과 주요 하천·도명·주요 섬만 표시한 간략한 지도이며 바다에는 파도 무늬가 그려져 있다. 섬에는 울릉도와 우산도(于山島)가 따로 표시되어 있으나 그 위치는 반대로 되어 있다. 「도별도」에는 부·군·현이 표시되었고 병영·수영 및 주요한 산·하천·섬이 표시되어 있다.
「동람도」의 「팔도전도」와 「도별도」는 조선 후기에 널리 보급되었던 지도책의 우리 나라 부문의 표준이 되었다. 그리고 이 지도는 당시 사람들의 지도에 대한 개념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동람도」는 지도 그 자체보다도 『동국여지승람』을 읽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 목적이고, 또 판본의 크기와 모양에 제한을 받았으므로 당시의 자세한 지도에는 미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