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용이 유배지인 전라도 강진에서 우리 나라의 강역을 문헌 중심으로 살피고 그 내용에 대하여 고증한 책이다.
고본(稿本)으로 10권이 전해오다가 1903년에 장지연(張志淵)이 증보하여 『대한강역고(大韓疆域考)』로 책명을 바꾸어 황성신문사(皇城新聞社)에서 활자본 9권으로 간행하였다.
그 뒤 1936년에 신조선사(新朝鮮社)에서 활자본으로 간행된 154권 76책의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6집 지리집에 『대동수경(大東水經)』과 같이 『강역고(疆域考)』를 포함시켰다. 『여유당전서』에 포함된 『강역고』는 원래의 10권을 4권으로 만들었다.
내용 구성은 제1권에 조선고(朝鮮考)·사군총고(四郡總考)·낙랑고(樂浪考)·현도고(玄菟考)·임둔고(臨屯考)·진번고(眞番考)·낙랑별고(樂浪別考)·대방고(帶方考)·삼한총고(三韓總考)·마한고(馬韓考)·진한고(辰韓考)·변진고(弁辰考) 등이 있고, 제2권에 변진별고(弁辰別考)·옥저고(沃沮考)·예맥고(濊貊考)·예맥별고(濊貊別考)·말갈고(靺鞨考)·발해고(渤海考) 등이 있다.
또한 제3권은 졸본고(卒本考)·국내고(國內考)·환도고(丸都考)·위례고(慰禮考)·한성고(漢城考)·팔도연혁총서상(八道沿革總敍上)·팔도연혁총서하(八道沿革總敍下)·패수변(浿水辯)·백산보(白山譜), 제4권은 발해속고(渤海續考)·북로연혁속(北路沿革續)·서북로연혁속(西北路沿革續) 등으로 되어 있다.
기자조선(箕子朝鮮)에서 발해에 이르는 우리 나라 강역의 역사를 중국 및 우리 나라의 문헌을 들어서 고증하고, 저자의 의견을 별도로 첨부하여 그 내력을 자세히 밝히고 있다.
마한·진한·변한 등 삼한에 관한 내용이 있기는 하나 대부분은 한사군(漢四郡)·발해·북로(함경도)·서북로(평안도) 등 북방에 대한 강계를 밝히는 데 힘쓰고 있다.
부족이나 국가 외에도 위치의 비정(比定)에 문제가 많은 국내·환도·위례·패수 등에 대하여 상세한 고증을 하고 있다. 또한, 강역의 고증에 그치지 않고 잘못 기록된 지리서의 정정에도 힘쓰고 있다.
즉, 『동국여지승람』에 기자의 정전(井田)이 평양부 남외성(南外城) 안에 있다고 기록한 것은 믿을 수 없으며, 기자가 정전제를 시행하였으면 어찌 평양 일부에만 한정되었겠느냐고 반문하였다. 그리고 당나라의 이적(李勣)이 이곳에 유둔(留屯)할 때에 만든 둔전(屯田)의 유지(遺址)라고 주장하였다.
이 책은 한백겸(韓白謙)의 『동국지리지』,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와 같이 실학자가 저술한 우리 나라의 역사지리서로서, 사료를 비판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서술한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지리서이다.
규장각도서에 있다. 신조선사에서 발간된 『여유당전서』는 1970년에 이우성(李佑成)의 해제와 더불어 6책으로 압축, 영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