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의상(義湘)이 중국에서 귀국한 뒤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곳의 지형이 학을 닮았다 하여 처음에는 동학사(東鶴寺)라 불렀다고 하며, 조선 중기에는 동암(東庵)으로, 1934년의 중창 이후부터는 동악사로 불리게 되었다.
19세기 후반에 편찬된 『예천군지』에, ‘동악사는 군에서 1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시대 후기까지 존속해 왔음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과 요사채가 있는데, 이들은 1934년에 불교신도들의 성금으로 이룩된 것이다. 보광전내에 봉안되어 있는 1985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고려 중기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뒷면 벽의 탱화에 두광(頭光) 및 신광(身光)을 그려서 불상과의 조화를 꾀하고 있다.
이 밖에 요사채 앞에는 고려 중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재(石塔材)가 있으며, 주변에서 많은 기와조각들이 출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