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 1390년(공양왕 2) 정월에 열린 경연에서 처음으로 동지경연사의 직함이 나타나는데 이때는 2인이 정원이었다.
그 뒤 조선 세종 때에 국왕 자신이 경연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1418년(세종 즉위년)에 지사·시강관(侍講官)과 더불어 동지사도 1인 가설됨으로써 정원은 3인이 되어 『경국대전』에 실렸다. 3인 모두 타관이 겸하게 되어 있는데 예겸(例兼)의 규정은 없다.
경연에서의 진강좌차(進講座次)는 지사와 함께 서벽(西壁)이다. 지사와 구체적인 임무의 분담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지사의 보좌역이다.
즉 지사와 동지사의 구분은 품계에 따라 임명될 뿐 경연의 분번(分番) 등에서 그들은 똑같은 처지에서 일을 나누었다. 실제의 경연에서 진강(進講)은 주로 3품 이하의 녹관들이 맡고, 동지사 이상의 겸관들은 주로 논(論)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