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경연사 ()

목차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경연청(經筵廳)에 소속된 종2품의 관직.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조선시대 경연청(經筵廳)에 소속된 종2품의 관직.
내용

고려말 1390년(공양왕 2) 정월에 열린 경연에서 처음으로 동지경연사의 직함이 나타나는데 이때는 2인이 정원이었다.

그 뒤 조선 세종 때에 국왕 자신이 경연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면서 1418년(세종 즉위년)에 지사·시강관(侍講官)과 더불어 동지사도 1인 가설됨으로써 정원은 3인이 되어 『경국대전』에 실렸다. 3인 모두 타관이 겸하게 되어 있는데 예겸(例兼)의 규정은 없다.

경연에서의 진강좌차(進講座次)는 지사와 함께 서벽(西壁)이다. 지사와 구체적인 임무의 분담이 있는 것은 아니고 지사의 보좌역이다.

즉 지사와 동지사의 구분은 품계에 따라 임명될 뿐 경연의 분번(分番) 등에서 그들은 똑같은 처지에서 일을 나누었다. 실제의 경연에서 진강(進講)은 주로 3품 이하의 녹관들이 맡고, 동지사 이상의 겸관들은 주로 논(論)을 하였다.

참고문헌

「조선초기(朝鮮初期)의 경연제도(經筵制度)」(남지대, 『한국사론(韓國史論)』6, 1980)
집필자
이태진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