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고리

선사문화
물품
초기 철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널리 사용된 허리띠 부속 용구.
이칭
이칭
대구(帶鉤), 교구(鉸具)
물품
재질
청동|철|옥|금|은
용도
허리띠고리
제작 시기
초기 철기시대~고려시대
내용 요약

띠고리는 초기 철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널리 사용된 허리띠 부속 용구이다. 띠고리는 대구와 교구로 구분된다. 대구는 가죽이나 노끈으로 만든 띠에 고리쇠를 걸어 사용하는 띠고리로 초기 철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까지 사용되었다. 교구는 가죽이나 헝겊으로 만든 띠의 한쪽에 달아 띠의 다른 한쪽 구멍에 꿰거나 허리띠 모양의 걸쇠에 걸게 되어 있는 금속 기구로, 삼국시대에 유행하며 고려시대까지 널리 쓰였다.

목차
정의
초기 철기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 널리 사용된 허리띠 부속 용구.
개설

띠고리는 대구(帶鉤)와 교구(鉸具)로 구분된다.

대구는 가죽이나 노끈으로 만든 띠에 고리쇠를 걸어 사용하는 띠고리로 초기 철기시대부터 원삼국시대까지 사용되었다. 대구는 형태에 따라 중원식 띠고리와 동물 모양 띠고리가 있다.

교구는 가죽이나 헝겊으로 만든 띠의 한쪽에 달아 띠의 다른 한쪽 구멍에 꿰거나, 허리띠 모양의 걸쇠에 걸게 되어 있는 금속 기구로, 삼국시대에 유행하며 고려시대까지 널리 쓰였다. 주로 허리띠에 많이 사용되었지만, 한편 마구나 화살통의 부속구로 사용되었을 개연성도 있다.

대구(帶鉤)

대구는 가죽띠나 노끈에 고리쇠를 걸어 사용하는 띠고리로 한반도에서는 중국계 대구와 동물 모양 띠고리가 출토된다.

중국계 대구는 중국의 춘추전국시대부터 청나라시대까지 사용되는 띠고리로 기본적인 형태는 비파 모양, 막대 모양이 있으며 동물이나 사람 모양이 장식되기도 한다. 재질은 청동제가 가장 많고 철, 옥, 금, 은 등 다양하게 확인된다. 중국계 대구는 표면에 금이나 은 등으로 주1하여 장식하는 경우가 많으며, 특히 중국 전국시대에 많이 확인된다.

한반도에서 중국계 대구는 북부 지역에 고조선 시기부터 중국의 비파 모양 띠고리가 유입되기 시작하며, 낙랑군 설치 이후에는 서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중국계 띠고리가 출토된다. 남부 지역은 서기전 1세기 대 중국계 비파 모양 띠고리가 창원다호리고분군 1호묘와 경산신대리유적 55호묘에서 1점씩 출토되었고, 서기 4세기 대 천안청당동 20호묘에서 봉 모양 띠고리가 1점 출토되었다. 남부 지역에서 출토되는 중국계 대구는 대체로 한반도에서 생산된 것이 아닌 중국에서 직접 수입된 것으로 보고 있다.

동물 모양 띠고리는 중국계 대구에 동물 모양이 결합되어 있는 형태로 호랑이 모양과 말 모양의 띠고리가 있다. 서기전 1세기에서 서기 4세기까지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유행한다.

동물 모양 띠고리는 동남부 지역과 중서부 지역에 분포하는데 동남부 지역은 호랑이 모양 띠고리가 10여 점, 말 모양 띠고리가 10여 점 출토되고, 중서부 지역은 호랑이 모양 띠고리가 3점, 말 모양 띠고리가 150여 점으로 중서부 지역에서 말 모양 띠고리가 압도적으로 많이 출토된다.

동물 모양 띠고리의 기원은 동물 장식이 사용된다는 점에서 북방 지역의 동물 의장이 유입되었다고 보았으나, 호랑이 모양 띠고리는 중국에서 유입된 것이라는 의견이 최근 제시되었다.

교구(鉸具)

교구는 가죽띠나 천띠의 한쪽 끝에 부착해서 띠의 다른 한쪽 끝을 끼워 결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삼국시대고분에서 다양한 종류가 출토되고 있으며, 금속제의 띠고리만이 알려져 있다. 흔히 알려지기로는 허리띠의 부속품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말 장식구나 화살통의 부속품인 경우도 많다.

형태는 반원 혹은 반타원형의 외륜에 짧은 봉상의 침이 가운데로 건너질러 걸쳐지도록 한 모양이다. 고구려나 백제의 고분에서 출토된 사례가 많지만, 가장 많은 종류와 양이 출토되는 곳은 신라와 가야 지역이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교구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속하는 것은 평양석암리9호에서 출토된 용문 띠고리로 누금 기법으로 표현된 일곱 마리의 용과 비취옥으로 장식된 허리띠이다.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와 내몽고자치구, 랴오닝성 등에서도 출토되고 있어 한나라에서 지방으로 내려 준 물건으로 보고 있다.

삼국시대의 교구는 4∼6세기경에 등장해서 여러 형태로 발전한다. 무령왕릉이나 신라 · 가야고분에서 화려한 금제 · 은제 허리띠가 있고, 7세기 대에 들어오면 당나라 시대의 복식이 영향을 주어 새로운 허리띠 금구의 문화가 보급된다고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의 왕릉급 무덤에서 나오는 교구는 금 · 은제 고급 위세품도 있고, 낮은 계층이 사용하는 일상용품도 있는 등 그 쓰임새가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참고문헌

단행본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논문

박장호, 「중서부지역 출토 진변한계 물질문화의 고고학적 연구」(영남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20)
김동일, 「동북아시아 호형장식의 표상과 한반도 출토 호형대구의 기원 연구」(『고고광장』 25, 부산고고학회, 2019)
박장호, 「원삼국기 동물형대구의 전개와 의미」(영남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11)
강인욱, 「한반도 출토 동물형 대구의 계통에 대한 시론적 검토」(『호남고고학보』 19, 호남고고학회, 2004)
주석
주1

금속이나 도자기, 목재 따위의 표면에 여러 가지 무늬를 새겨서 그 속에 같은 모양의 금, 은, 보석, 뼈, 자개 따위를 박아 넣는 공예 기법. 또는 그 기법으로 만든 작품. 고대부터 동서양에서 두루 이용하였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상감 청자와 나전 칠기에서 크게 발달하였고, 오늘날에도 나전 칠기, 자개농, 도자기 따위에 이용하고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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