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고리는 가죽이나 헝겊으로 만든 띠의 한쪽에 꼭지 모양의 걸쇠를 꽂고 다른 한쪽의 띠에 연결된 원형 · 타원형 고리에 걸게 된 허리띠고리이다. 말모양띠고리는 원삼국시대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만 확인되는 독특한 형태의 띠고리로 노끈 형태의 줄을 허리에 걸어 사용하였다.
원삼국시대 무덤에서 주로 출토되는 유물이지만, 집자리나 환호 등에서도 확인된다. 현재까지 출토 사례는 동남부 지역에서 약 30여 점이 있고 중서부 지역은 약 200여 점이 출토되었다.
말모양띠고리는 기존에는 동물의장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북방 유라시아 초원 유목민들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하였으나, 최근에는 북방 초원의 문화요소보다는 중원의 동물모양 띠고리가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 유입되면서 동남부 지역에서 독자적인 형태를 만들었다는 의견이 제시되었다.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동물모양띠고리는 말 모양과 호랑이 모양이 있다. 말모양띠고리는 동남부 지역과 중서부 지역에서 약 230여 점이 출토되었고 출토 사례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말모양띠고리의 분포는 동남부 지역의 영천, 경산 지역과 경주 지역, 김해 지역에서 분포하고, 중서부 지역은 청주, 천안, 아산, 평택, 충주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다.
말모양띠고리는 가장 시기가 빠른 것은 서기전 1세기 대의 영천 어은동 출토품으로 말의 형태가 가장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동남부 지역에서는 서기전 1세기에서 서기 3세기까지 사용되며 대체로 말 모양이 사실적인 형태가 만들어진다.
서기전 1세기에서 서기 1세기 대의 무덤에서는 다량의 유물과 함께 출토되지만, 서기 2세기에는 목걸이와 함께 출토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서부 지역은 서기 2세기에 출현하여 서기 4세기까지 사용되는데 주구가 달린 무덤에서 주로 출토된다.
말모양띠고리의 출토 시기와 분포를 통해 볼 때 동남부 지역의 진 · 변한과 중서부 지역의 마한 간의 교류 관계를 확인할 수 있으며, 특히 상주 지역에서 출토되는 말모양띠고리는 서기 4세기 대 중서부 지역의 말모양띠고리가 확인되고 있어 양 지역간 교류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말모양띠고리의 형태는 말이 직립하고 있는 형태를 가지고 있으며 말의 가슴 부분에 갈고리가 달려 있고 뒷면 엉덩이 부분에 둥근고리가 달려 있다. 몸체는 앞뒷면을 모두 표현하지는 않고 대체로 앞면은 튀어나오게 뒷면은 들어간 모양이다. 앞면에는 문양이 없는 것도 있으나, 문양이 새겨진 말모양띠고리도 있다.
동남부 지역의 말모양띠고리는 얼굴과 목, 배, 엉덩이, 격판에 집선문과 삼각점열문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고, 중서부 지역의 말모양띠고리는 얼굴과 배, 격판에 격자문과 원형점열문이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말모양띠고리의 제작은 유물에 남아 있는 주조 흔적으로 볼 때 밀랍을 사용하여 거푸집을 만들었다. 밀랍으로 형태를 만들고 문양을 새긴 다음 거푸집을 주물사를 이용하여 만들었다. 청동 요액은 둥근고리를 통해서 주입하였다.
지역별로 제작 기술에 차이가 확인되는데 문양을 새기는 방식에서 제작 방식에 차이가 확인되고 가스 배출 기술에서 기술적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로 인해 중서부 지역의 말모양띠고리에서 기포가 터져 구멍이 나 있는 말모양띠고리가 많이 확인된다.
띠고리의 착장 방식은 유기물이 잔존하지 않아 정확한 방법은 알 수 없으나 진시황 병마용이나 전국시대 나무인형에서 착장 방식을 추정할 수 있다. 병마용에 표현된 것을 보면 가죽이나 천으로 된 허리띠에 띠고리가 결합된 것이 보인다. 말모양띠고리도 이러한 방식으로 사용하였다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런데 한반도 남부 지역의 띠고리는 허리띠의 재질에서 중국과 차이가 확인된다. 말모양띠고리 뒷면의 둥근고리에는 섬유를 짜서 만든 노끈과 같은 형태의 유기물이 잔존하고 있는데, 이것을 통해 말모양띠고리의 허리띠는 가죽이 아닌 노끈의 형태를 사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