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많은 승려를 초청하여 접대하면 공덕이 크다는 의미에서 만승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중국에서는 당(唐)의 의종(懿宗) 때 시작되었으며,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에 만승회가 크게 유행하였다. 국왕의 기일(忌日)이나 인왕법회(仁王法會)가 있은 후 많은 승려를 초청하여 음식을 대접하였는데 이를 반승(飯僧)이라 하고, 보다 많은 승려를 초청하여 반승하는 것을 만승회라고 하였다.
이 만승회는 설법을 들은 데 대한 보답의 뜻으로도 행하여지지만 불(佛)·법(法)·승(僧) 삼보(三寶) 가운데 승보신앙(僧寶信仰)의 한 형태이기도 한 것이다. 고려시대 만승회의 모임은 단순히 음식만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국왕이 직접 나와 주악을 명하고 무희(舞戱)·기악(妓樂)도 하게 하였다. 그리고 물질적인 보답으로서 음식 외의 보시(布施)도 있었으므로 많은 비용이 소요되었다. 한번 만승회가 시작되면 하루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3일 동안 계속되기도 하였으므로 재정적인 압박을 주어 많은 폐단을 남기기도 하였다.
국왕 등 국가가 주관하는 만승회는 고려시대에는 성행하였으나 조선시대에는 폐지되고 사찰 내에서 대중공양(大衆供養)하는 형식으로 전승되고 있다. 대중공양이란 불공(佛供)·재의식(齋儀式) 등이 있은 이후 제물을 대중이 나누어 먹는 일을 말하고, 또한 불탄절·성도절·백중절 등의 명절에 신도들이 승려를 대접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만승회 또는 반승이 변형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