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나갑배(麻那甲背)’·‘성방갑배매노(城方甲背昧奴)’로도 나타난다. 관위는 중좌평(中佐平)이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529년 남가라(南加羅)와 탁기탄(啄己呑)이 신라에 의하여 멸망되자, 이전 시기에 가야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던 백제는 마나갑배와 장군 군윤귀(君尹貴)·마로(麻鹵) 등을 안라(安羅)에 파견하여 남가라의 부흥을 도모하였다고 한다. 이때 왜(倭)는 근강모야신(近江毛野臣)을 파견하여 임나의 재건에 노력하였다고 한다. 한편, 『일본서기』의 543년 기사에서도 금관가야의 부흥을 위하여 대책을 논의하는 백제 대신들의 이름 중에 상좌평사택기루(沙宅己婁), 하좌평목윤귀(木尹貴), 덕솔(德率) 비리막고(鼻利莫古) 등과 함께 목례마나가 나타난다.
목례마나는 이처럼 백제 성왕대에 신라의 활발한 가야정복정책에 대응하기 위하여 가야에 파견되었으며, 후에는 백제의 최고 관위인 좌평으로 지위가 상승하였다. 그의 이름 중에 나타나는 성방(城方)은 백제의 지방 거점인 오방(五方) 및 중요성을 일컫는 듯하다.
갑배(甲背)는 방과 성의 우두머리인 방령(方領)이나 성주(城主)·군장(郡將)을 의미하는 용어로 생각된다. 한편, 『일본서기』무열왕(武烈王) 6년조에는 백제의 사신으로 왜에 파견된 마나군(麻那君)이라는 인물이 있는데, 동일한 사람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