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약 800평 정도의 대지와 석축 등이 남아 있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현장에서 발견된 유물로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조선 중기까지 유지되어왔던 절임을 알 수 있다. 청주 근교의 사지 중에서 가장 많은 막새가 출토되고 있어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절터 부근에서 ‘성(城)’자가 새겨진 기와가 많이 출토되고 있어 일부 학계에서는 이 절을 서원경성시대(西原京城時代)의 치소(治所)로 추정하기도 한다. 현재 절터 앞에는 목암사(牧巖寺)라는 절이 신축되어 부근에서 수합한 파불상(破佛像)을 봉안하고 있다.
유물로는 거대한 자연석을 이용하여 쌓은 길이 50m, 높이 3∼8m의 석축(石築)과 석불입상, 보탑석수(寶塔石手), 각종 기와류 들이 있다. 이 중 석불입상은 목암사 용화전 안에 봉안되어 있는데, 의문(衣文) 등의 조각수법이 빼어난 통일신라시대 작품이며, 높이는 195㎝이다.
또, 1978년에 발견된 보탑석수는 다문천왕(多聞天王)의 좌수로 추정되고 있어 이 절에 사천왕상이 봉안되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특히, 각종 기와류 가운데 귀면와(鬼面瓦), 실상화문(實相華文) 수막새, 연화문 수막새, 천력2년명(天曆二年銘, 1329) 암막새 등은 이 절이 흥성하였을 때의 사세(寺勢)를 짐작하게 하는 좋은 유물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