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553년(성왕 30) 덕이(德異) 또는 덕예(德隸)라고 하는 승려가 창건했다고 전하며, 혹은 725년(성덕왕 24)에 서역 금지국(金地國)에서 온 정명(淨明)이 창건했다고도 한다.
고려 후기 원나라 임천사(臨川寺)의 승려 원명국사(圓明國師) 징엄(澄嚴)이 중건하였다. 원명은 꿈에 백운산에 있는 총지사(摠持寺)에서 소가 한 마리 나와 이 암자에 이르는 것을 보고 그곳에 가보았더니 계곡 바위에 소 발자국 흔적이 있었으므로 풀을 엮어서 암자를 만든 뒤 목우암이라 하고, 그곳에 머무르면서 수도하였다고 한다.
그 뒤 1662년(현종 3) 영욱(靈旭)이 중창하였고, 1896년(건양 1) 무렵 폐사되었으나 1913년 정병우(丁丙愚)가 암자를 지어 법등을 이었다. 1951년 활연(活然)이 주석하면서 1970년에 옛터에 인법당을, 현 대웅전 자리에는 요사를 지었다. 1990년 대웅전을 지었고, 1992년 산신각을 복원한 데 이어 1993년에는 삼존불상을 봉안하였다.
1896년 법천사(法泉寺)가 폐사되었을 때 법천사 대웅전에 봉안하였던 목조 삼존불상을 목우암으로 옮겨왔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1971년에 보수한 축성각(祝聖閣), 1984년에 건립한 요사채 등이 있다. 법당 안에는 1988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목우암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높이 195㎝로서 상품하생인(上品下生印)을 취하고 있다.
축성각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조선 인조 때 인근 법천사(法泉寺)의 중건과 함께 이루어진 건물로 추정되고 있다. 내부는 2칸으로 구분하여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24구의 나한상을 봉안한 나한전(羅漢殿)과 산신당(山神堂)으로 나누어져 있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석등과 부도가 있다. 법당 앞에 있는 석등은 높이 215㎝, 너비 20㎝의 크기로 팔각간주(八角干柱)로 받쳐져 있는데, ‘康熙二十年辛酉(강희20년신유)’라는 명(銘)이 음각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1681년(숙종 7)에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절 일원이 1984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