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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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상사위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상사위
회화
작품
국가유산
제주도 제주시 용담동의 신당인 내왓당[川外堂]에서 모셨던 조선시대 무신도.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濟州道 내왓堂 巫神圖)
분류
유물/기타종교회화/무속화/무속화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가민속문화유산(2001년 11월 30일 지정)
소재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제주대학로 102 (아라일동, 제주대학교) 제주대학교박물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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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제주도 제주시 용담동의 신당인 내왓당[川外堂]에서 모셨던 조선시대 무신도.
개설

내왓당은 1882년(고종 19)에 헐려 현재 남아 있지 않다. 내왓당이 헐리자 당의 심방[무당의 제주 방언] 고임생(高壬生)이 그곳의 무신도 10폭을 삼도동에 있던 자신의 집에 가져다 모셨다. 그가 사망한 후 부인은 제주시 산지천(山地川) 가까이에 있던 남수각 근처 굴로 이사를 했는데, 이때 무신도와 무구도 함께 옮겨졌다. 1959년 제주대학교 교수이자 민속학자 현용준이 이곳을 발견하였고 1963년 고임생의 부인 사망 후 무신도를 제주대학교로 옮겼다. 이 무신도들은 1970년 제주대학교 박물관 전시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었다.

내왓당 무신도는 원래는 12폭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는 남신상 6폭과 여신상 4폭만 남아 있다. 종이에 빨강·노랑·초록 등 삼색 위주로 채색되었으며, 부분적으로 금박이 사용되었다. 1959년 발견 당시에는 그림이 송판에 붙어 있었으나 훼손이 심해 2000년 제주대학교 박물관에서 다시 배접하여 보관하고 있다. 발견 당시 10폭 모두 오른편 상단에 붉은색 한자로 신명(神名)이 적혀 있었으나 현재는 8폭에만 남아 있다.

내용

거친 자연환경을 가진 섬 제주도는 어느 지역보다 무속이 성행하여 독특한 무속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강신 체험에 의해 영력을 가지던 중북부 지역의 무당과 달리 제주도 심방은 혈통에 의해 사제권이 세습되었다. 강신 영통이 없었기 때문에 자가의 신단은 없으며, 매개물인 무점구(巫占具)를 통해 신의 뜻을 물어 점을 쳤고, 신을 향한 일방적 가무로 굿을 행하였다. 강신무는 몸주신을 신단(神壇)에 모시기 때문에 무신을 상징하는 무신도가 필요하지만, 세습무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다. 세습무임에도 무신도를 신단에 모셨다는 점에서 제주의 무신도는 예외적이다.

내왓당 무신도는 1466년(세조 12) 7월 27일조 『세조실록』에서 “천외당신(川外堂神, 내왓당신)의 화상(畫像)이 이미 불타 버렸다.”는 기록으로 처음 확인할 수 있다. 이 기록은 1465년(세조 11) 제주분대어사(濟州分臺御史) 강우문(姜遇文)이 제주안무사(濟州按撫使) 복승리(卜承利)가 노산군[단종]의 얼굴을 그려 놓고 요사스런 제사를 지낸다고 무고한 사건과 관련하여 나타난 것이지만, 15세기 당시 내왓당 무신도가 있었음을 알게 해주며 현재 내왓당 무신도의 연원을 짐작케 한다.

내왓당 무신도는 「내왓당본풀이」를 통해서 12폭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본풀이에서 “서수문 밧 삼동물 ᄀᆞ의 좌정ᄒᆞ신 열두신위전 본초”라고 하여 이 당에는 12신위가 있다는 사실과 그 근본 내력을 설명하고 있다. 남아 있는 내왓당 무신도 10폭 중 6폭은 남신상으로, 제석위(帝釋位), 원망위(寃望位), 수령위(水靈位), 천자위(天子位), 감찰위(監察位), 상사위(相思位)이고, 여신 4폭은 본궁위(本宮位), 중전위(中殿位), 상군위(相君位), 홍아위(紅兒位)이다. 이외 「내왓당본풀이」에 기록된 ‘내외 불도 마누라’ 2폭은 불교 관련한 신상으로 추정되지만 1466년 강우문의 복승리 무고 사건 때 단종 내외의 화상으로 오인되어 불태워진 이후 10신위의 도상만 남게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

「내왓당본풀이」에 의하면, 천자위는 대국천자의 아들로, 불효하여 바다로 내쫓겼다가 용왕의 딸과 결혼하고, 나중에 강남천자국의 변란을 제압한 후 제주시 내왓당에 좌정한 신이다. 상사대왕은 서천서역국에서 들어온 신으로, 큰 부인은 중전대부인[중전위]이고 작은 부인은 정절상군농[상군위]이다. 작은 부인은 일곱 아기를 임신한 몸으로 돼지고기가 먹고 싶어 돼지털 세 개를 뽑아 청동화로에 태우다가 남편으로부터 부정하다고 내쫓김을 당했다가 나중에 큰 부인과 함께 내왓당에 좌정되었다.

내왓당 무신도의 회화적 특징은, 내륙의 무신도가 대체로 정적인 형상을 취하는 것과 달리 이 무신도의 주인공들은 동적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옷자락과 목에 맨 머플러, 위압적인 큰 눈과 코, 그리고 치졸하게 묘사되었지만 율동감 넘치는 손가락과 몸 전체를 휘감는 수많은 선들은 이 무신도를 생동감 있게 만든다. 또 천자위 머리 뒤편의 꿈틀대는 뱀의 형상은 뱀을 신앙하는 제주의 풍토를 반영하고 있다.

내왓당 무신도의 제작 연대에 대해 현용준은 1466년 이전에 그려진 것이라고 주장한 반면, 미술평론가 김유정은 1702년 제주 목사 이형상(1653~1733)의 무교 탄압 때 불탄 것을 1703년에 다시 그린 것이 현재의 무신도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내왓당이 헐릴 무렵인 19세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제주도 신화의 수수께끼』(현용준, 집문당, 2005)
『중요민속자료 지정조사보고서: 제주도 내왓당 무신도, 장영직 유품』(문화재청, 2001)
「무신도의 휴머니즘」(정병모, 『논문집』 17, 경주대학교, 2004)
「제주의 무신도: 현존하는 내왓당 무신도 10신위 연구」(김유정, 『탐라문화』 18,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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