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외리 문양전 일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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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외리 문양전 일괄
부여 외리 문양전 일괄
공예
유물
문화재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외리의 옛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시대의 벽돌(전).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외리의 옛 절터에서 출토된 백제시대의 벽돌(전).
개설

196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문양전 일괄품은 다양한 문양을 얕은 부조(浮彫)형식으로 장식한 후 구워 만들었다. 1937년 3월에 모두 150점의 백제시대의 벽돌 파편(破片)이 출토되었으며 그 중 42매가 완전한 형태였다.

그 중 보물로 지정된 8매의 문양전은 정방형에 가까운 1변 29㎝ 내외, 두께 4㎝의 벽돌로서 네 모서리에는 각각 홈이 패어져 각 전들을 연결하여 깔 수 있게 되어 있다. 이 전들의 표면에는 각각 연화문(蓮花文), 와운문(渦雲文), 봉황문(鳳凰文), 반룡문(蟠龍文), 귀형문(鬼形文), 산경문(山景文), 귀형산경문, 봉황산경문 등 8종의 무늬가 부조되었다.

내용

이 8종의 문양전에 나타나는 표현 형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연화문전 : 톱니무늬 형식의 작은 꽃술에 둘러싸인 커다란 자방(子房)을 중심으로 10개의 연화판(蓮花瓣)이 둘러졌고, 다시 그 화판 사이사이마다 간엽(間葉)이 있다. 이 연화문 주연(周緣)에는 두 줄의 융기선 사이에 표현된 연주문(連珠文)으로 둘러졌다. 화판 속은 인동문(忍冬紋)으로 장식되었으며, 전의 네 모퉁이에도 4엽 화문을 4등분한 화문장식이 있다.

② 와운문전 : 전의 중앙부에는 굵은 융기선으로 둘러진 원상(圓狀) 안에 8판의 작은 연화문이 배치되었다. 이를 중심으로 8개의 와운문(渦雲文)이 추회상(追廻狀)으로 연속되어 있고, 다시 그 주연을 2줄의 융기선 사이에 도드라지게 표현된 연주문으로 둘렀다. 역시 네 모퉁이에는 각기 화문이 4등분되어 장식되었다.

③ 봉황문전 : 정방형의 표면 가득히 연주문대로 이루어진 커다란 원곽(圓廓)을 배치하고, 그 안에 우아한 자태의 봉황 한 마리를 가득차게 배치한 모양이다. 매우 율동적인 곡선미를 보여준 봉황은 계형(鷄形)으로, 상상력이 풍부한 작품이다.

④ 반룡문전 : 봉황문전과 같은 구성으로서, 표면 가득하게 연주문대의 원곽을 배치하고 그 안에 S자 모양의 큰 곡선을 이루며 소용돌이치는 용의 모습을 새겼다. 용의 형상은 몸체에 비하여 머리 부분을 훨씬 과장하여 묘사되었으며, 꼬리 부분은 크게 원을 그리고 사지(四肢)를 크게 벌려 도약하는 모습이다.

⑤ 귀형문전 : 연화대(蓮花臺) 위에 정면으로 직립(直立)하고 있는 도깨비 형상으로서, 전신의 크기에 비해서 머리 부분이 크게 묘사되었다. 크게 부릅뜬 눈, 크게 벌린 입의 아래 위에 날카롭게 뻗은 송곳니, 얼굴 양면에 덥수룩한 수염, 양어깨에 돋친 갈기 모양의 깃털[羽毛] 등은 위압감이 넘친다. 허리에는 환식(環飾)이 매달린 과대(銙帶)가 둘러졌고 가운데는 요패(腰佩)의 긴 수식(垂飾)이 내려와 있다.

⑥ 귀형산경문전 : 귀형문전의 도깨비 형상이 그대로 배치되었으나 연화좌 대신에 괴석(怪石) 모양의 해암(海巖)이 삐죽삐죽 솟아 있고, 그 밑에 파도가 물결을 이룬 산경(山景)을 딛고 서 있는 모습이다.

⑦ 산경문전 : 앞에는 강물이 물결을 이루고 뾰죽뾰죽한 바위가 높고 낮게 솟았으며, 그 뒤로 삼산형(三山形)의 크고 작은, 또 높고 낮은 연봉(連峯)이 겹겹이 전개되었다. 둥그런 산정(山頂)에는 송림(松林)이 무성하다. 산 아래 중턱에는 기와집 한 채가 있고 그 밑의 오른쪽에는 그 집을 향하여 계곡을 오르는 승려 한 명이 보인다. 산중에 사찰이 있는 이 산경문은 백제 고지(故地)의 산세를 묘사한 듯 매우 부드럽고 유연한 산경의 표현을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다.

⑧ 봉황산경문전 : 이 역시 산경문의 일종이나 산봉우리 위의 환상적인 구름과 봉황의 모습이 특징이다. 하단에 산수 풍경을 부조하고 상단에는 삼산형 봉우리가 솟았는데, 중앙의 산봉에는 큰 난봉(鸞鳳)이 우뚝 서서 양 날개를 펼쳐 하늘을 향하였다. 근경(近景)의 산봉 앞에는 구름이 안개처럼 겹겹이 흐르고, 산 중턱에는 산과 산 사이로 집이 두어 채 보이는 것이 산사(山寺)가 분명하다. 경내에는 당간지주(幢竿支柱)가 기단 위에 서 있다.

이렇게 산경 속에 절이 있고 승려가 산 중턱을 오르고 있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은 백제시대 회화(繪畵)를 짐작하게 하는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의의와 평가

이들 문양전의 성격이나 제작기법 등은 대체로 중국 남조(南朝)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즉, 부여 외리 문양전과 비슷한 문양전이 중국 남조시대의 유물 중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데, 동진(東晉) 영화4년(永和四年, 348)의 명문(銘文)이 있는 중국 난징(南京) 출토 전과 신녕전와창제1호묘(新寧塼瓦廠第一號墓)의 와전(瓦塼)과 매우 깊은 관련을 보여 준다.

또 일본의 경우 나라(奈良) 난호케사(南法華寺)에 소장되어 있는 벽전(壁塼)과 오카사(岡寺) 출토 봉황문전(白鳳時代, 1변 39㎝, 두께 8.8㎝) 등은 백제 문화의 영향을 말해주고 있다.

참고문헌

『문화재대관』7-보물 5-(한국문화재보호협회 편, 대학당, 1986)
집필자
임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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