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감천(甘泉). 1429년(세종 11) 식년 문과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였다. 1450년(문종 1) 지평(持平)으로 있으면서 영양위(寧陽尉: 敬惠公主의 남편)의 집을 새로 지으려 할 때 성안의 민가가 헐릴 것이 많다 하여 옛집을 그대로 수리하여 거주함이 옳다고 주청하였다.
1455년(세조 1) 군사(郡事)를 역임하였으며 1463년 집의(執義)가 되고, 1465년 제주목사를 거쳐 직제학(直提學)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이훈(李壎)과 노비쟁송으로 모함을 받는 상소(上疏)로 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