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평(南平). 의종 때 지문하성사 집현전대학사(知門下省事集賢殿大學士)를 지낸 문공유(文公裕)의 손자로, 명종 때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郎平章事)를 지낸 문극겸(文克謙)의 아들이다.
벼슬에 나아간 시기와 방법은 확인되지 않으며, 1216년(고종 3) 추밀원사(樞密院使)로서 이미 재추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1220년 독직사건(瀆職事件)에 관계되어 안서부사(安西副使)로 좌천되었으나, 다음 해 곧 수사공 좌복야(守司空左僕射)로 승진하였다. 그뒤 순탄한 관로를 밟아 1222년 지문하성사, 1227년 참지정사 판예부사(參知政事判禮部事)가 되었으며, 다음 해 지문하성사로 있다가 별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