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에 따르면, 진구(神功) 섭정 44년(甲子, 4세기 중엽?)에 미주류·막고(莫古)·구저(久氐) 등이 탁순국(卓淳國)에 찾아와 “백제 왕이 동쪽에 일본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듣고 우리를 보내 통교하도록 하였다. 가는 길을 찾다가 이곳에 이르렀으니 길을 가르쳐 달라.”라고 하였다.
그 뒤 왜에서 사마숙녜(斯摩宿禰)가 오게 되어 그러한 사실을 탁순왕말금간기(末錦旱岐)가 알리자, 사마숙녜는 그의 시종이파이(爾波移)를 백제로 보냈다. 백제의 초고왕(肖古王:근초고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오색 비단 각 1필과 각궁(角弓), 철정(鐵鋌) 40매를 예물로 주고 창고를 열어 여러 가지 진기한 보물을 보여 주면서, 왜와 통교하고 싶었으나 길을 알지 못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하고 이번 기회에 이를 바치겠다고 하였다.
다음 해 4월 백제왕이 구저·미주류·막고를 보내 왜와 통교하게 했는데, 백제 물품이 신라보다 적은 것을 알고 왜 왕이 그 까닭을 묻자, 도중에 길을 잃어 신라인에게 억류되어 죽음을 당하기에 이르렀으나 공물을 바치고 풀려났다고 하였다. 이에 왜 왕은 천태장언(千態長彦 또는 職麻那那加比跪)을 신라에 보내 백제의 공물을 빼앗은 일을 책망했다고 한다.
이 설화의 자료는 백제 삼서 중 『백제기(百濟記)』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그 시기는 『일본서기』의 간지를 120년 조정한 366년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내용상 백제인들이 왜로 가기 위해 탁순 지역으로 갔다는 점, 왜의 사신인 사마숙녜 및 천태장언에 대해 일본측에서 알지 못하고 있다는 점, 신라가 백제의 공물을 빼앗았다는 점 등에 의문이 있다.
따라서 미주류의 실재성(實在性)도 의문스러우나, 그의 활동을 전하는 설화의 핵심은 백제와 왜가 최초로 통교하는 과정을 보여 주는 것이며, 이와 같은 일은 4세기 중엽, 즉 근초고왕이 활발하게 영토를 확장하던 시기에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