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강(閔橿, 1884~1931)은 충청북도 청주 출신으로 본관은 여흥(驪興)이다.
1909년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였으며, 1910년 국권피탈(國權被奪)을 당하게 되자 남대문 밖에 소의학교를 설립하였다. 1919년 3 · 1운동이 일어나자 한성정부 수립을 위한 국민대회의 준비위원으로서 활동하였다. 자신이 경영하는 동화약방을 거점으로 준비 자금을 모으고 연락을 취하였다. 이 일로 경찰에 체포되었으나 8월에 보석(保釋)으로 출옥하였다.
출옥 이후 조선민족대동단에 가입하여 동화약방을 연락 거점으로 제공하였다. 조선민족대동단이 1919년 10월 31일을 기해 준비한 만세 시위에서 서울의 연통단, 중앙단, 중앙청년단, 독립청년단, 불교중학학림 등 학생과 청년단체의 동원 책임을 맡았다.
만세 시위가 준비 부족으로 연기되고 경찰에 발각되면서 체포되었다. 1921년 3월 23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상하이〔上海〕로 건너가서 1924년 상해대한교민단의 학무위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기도 하였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追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