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경렬 ()

근대사
인물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칭
이명
곽봉수(郭奉守)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01년
사망 연도
1968년
본관
현풍(玄風)
출생지
전라북도 김제시
주요 경력
대한광복회|임시정부 군자금 모집위원
대표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1990)
관련 사건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
내용 요약

곽경렬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가을부터 전라북도 김제 일대에서 6인의 동지와 함께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위원이라는 명의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는 일곱 차례의 활동을 펼쳤는데, 동지들이 체포되면서 은신해 있다가 뒤늦게 붙잡혀 옥고를 치렀다.

정의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인적사항

곽경렬(郭京烈, 1901~1968)은 전라북도 김제군(지금의 김제시) 출신으로 이명(異名)은 곽봉수(郭奉守)이고, 본관은 현풍(玄風)이다.

주요 활동

1915년 대한광복회에 들어가 박곡(朴谷) · 벌교(筏橋) 등지의 친일파 부호를 숙청하였으며, 오성(烏城)의 일본헌병 분견대를 습격하는 등 많은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6년 일본 경찰의 체포망을 피하여 잠시 만주로 망명하였다가 이듬해 다시 국내로 몰래 돌아와 계속 활동하였다.

1919년 9월부터 6인의 동지를 모아 전라북도 김제군 일대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운동자금 모금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임시정부 군자금 모집위원이라는 명의로 김제군 일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는 일곱 차례의 활동을 펼쳤다.

군자금 모금 활동 사실이 발각되어 함께 활동한 박재문이 1919년에 체포된 이래 남정관, 박봉춘 등이 차례대로 붙잡히게 되자 몸을 숨기며 도피 생활을 하다가, 1926년 2월 11일에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년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1990년 건국훈장 주1주2되었다.

참고문헌

신문 · 잡지

『조선일보』(1926. 2. 24)
『조선일보』(1921. 2. 5)
주석
주1

건국 훈장 중 네 번째 등급.    우리말샘

주2

죽은 뒤에 관등을 올리거나 훈장 따위를 줌. 우리나라의 경우 긴급 상황에서 살신성인의 정신을 실천하다가 사망하거나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여 사회 전체의 본받을 만한 모범이 된 사람, 생전에 큰 공을 세워 국민의 존경을 받으며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준다.    우리말샘

관련 미디어 (1)
집필자
김정인(춘천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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