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현감 민치서(閔致敍)의 아들이다.
1880년(고종 17) 황주목사(黃州牧使)를 지냈으며, 1882년 여주목사(驪州牧使)에 재임하였다. 1886년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에 임명되었다.
이듬해 춘천부사에 재임하였으며 독련어사(督鍊御史)의 역을 맡기도 하였다. 행정구역이 개편된 뒤 춘천부에 유수(留守)를 두게 되자 춘천부사에서 그대로 춘천부유수가 되어 1892년까지 재임하였다.
1893년 5월 독판내무부사(督辦內務府事)에 임명되었으며, 그해 12월 다시 춘천부유수로 임명되었다. 춘천부유수 재임 때 동학농민전쟁 발발에 대한 문책으로 조정의 민씨척족들이 해직되자 민두호도 역시 물러났다. 그러나 1900년 의정부찬정(議政府贊政)에 임명되고 칙임관1등에 서임되었다. 1902년 종1품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올랐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